올해처럼 더웠던 적이 있었나요? 지구 온난화는 학자들과 정치하는 사람들만의 이슈가 아니라 바로 우리 보통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는 뜨거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 오면서 에어컨이 뭐 필요할까 하고 남 주고 왔습니다. 시골스럽게 산다고 신문도 끊고 TV도 거의 안보고 지냈습니다. 수년 전까지는 에어컨 없이도 여름 잘 보냈습니다. 한여름 유난히 더운 며칠만 참으면 거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온난화 탓에 이제는 산골에서도 에어컨 없이는 여름나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만, 지리산 자락 우리 마을에는 아직도 대부분의 집에 에어컨이 없습니다. 예전의 <여보~ 시골 부모님 집에 보일러 놔 드려야겠어요~>라는 광고처럼, <여보~ 시골 부모님께 에어컨 달아 드려야겠어요~>라는 광고가 나올 듯도 합니다. 이제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지고 풀도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데 모기는 여전히 기승이고 폭염에 풀 벨 일은 아득하기만 하네요. 이어지는 더위에 심신이 다 지쳤습니다.
저녁 무렵에 아들과 엄천강에 내려가서 잠깐 뜰채질을 했습니다. 둘이서 반시간 가량 희희낙낙 철벅거리니 갈겨니, 모래무치같은 조무래기들이 수십 마리 잡히네요. 아들은 배따고 나는 튀김 반죽해서 오늘의 스페셜로 저녁반찬을 내 놓았더니 아내의 지적이 이어집니다. “비늘은 벗겼느냐~ 왜 쓴 맛이 나느냐? 양념에 고춧가루를 왜 떡이 되도록 넣었느냐? 기름을 먼저 데우고 고기를 튀겨야지 그냥 넣으면 어쩌느냐? 반죽을 잘 입혀 한 마리씩 넣어 튀겨야지 한꺼번에 넣으면 어떡하느냐” 등등 오늘 튀긴 물고기 숫자만큼 많은 지적 사항이 있었는데, 어쨌든 오늘의 스페셜은 완전 고소하고 맛있었습니다. 내가 여태 먹은 튀김중 제일 맛있다고 하니 아내는 자화자찬이라고 코로 웃으며 마무리 지적을 하네요. “설거지할 때 퐁퐁 꼭 하시오~ 그냥 대충대충 하면...”자랑이 아니라 아내는 샘물 같은 여자입니다. 샘에서 매일 일정량의 물이 솟아나듯이 아내는 매일 일정량의 잔소리를 생산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일일 생산량의 대부분을 아이들에게 배급해 주었는데 아이들의 머리가 커지고 더 이상 소비가 이루지지지 않자 잉여 생산량을 나에게 과도하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샘처럼 자연스럽게 넘쳐흐르는 것을. 한 때는 아내의 잔소리에 나도 용감하게 대적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재미눈에 힘을 주고 또박또박 대꾸하였는데, 오랜 경험이 이건 내가 도무지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판단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내가 잔소리하면 머리를 끄덕이기도 하고 푹 숙이기도 합니다. 이런 태도는 아내가 보기엔 내가 반성하는 모습으로 비춰져서 확실히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만, 사실 내가 머리를 끄덕끄덕하는 것은 잔소리가 머리위로 살짝살짝 비켜가게 하는 동작입니다. 잔소리가 심할 땐 고개를 푹 숙이면 머리위로 쑥쑥 지나가 버리지요.
그런데 날씨가 덥다는 얘기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져 마누라 흉을 보고 있네요. 이거 아무래도 내가 폭염에 더위를 먹은 모양입니다. 더위를 먹지 않고서야 어찌 감히 이래 대놓고...ㅋㅋ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