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농법으로 사과를 재배한지 4년째다. 잎은 칼슘보르도액으로, 또 뿌리는 미생물배양균으로 건강하게 길러 그 결과물로 맛있는 사과를 얻었다. 드셔보신 소비자는 지금까지 이런 맛의 사과는 없었다라고 하시면서 매년 사과를 구입해 드시고 계신다. 여기에 힘을 얻어 매년 되풀이 되는 친환경농법을 힘이 들지만 보람으로 여기며 한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리며 봄부터 그 힘든 작업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다. 올해도 사과들이 튼실하게 자라 추석 무렵 수확하는 사과는 간혹 붉은색이 보이는 녀석들도 있다. 늦가을에 수확하는 부사도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받아 잘 커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미생물배양액으로 땅의 지력을 높이다 보니 자연히 사과나무 밑에 베 놓은 풀이 썩어 퇴비가 되고 이렇게 몇 년을 되풀이 하다 보니 썩은 퇴비 속에 지렁이가 많게 된 것이다. 이것을 어찌 알았는지 멧돼지가 알게 된 것이다. 그저께 밭에 사과솎음작업을 하러갔던 아내가 밭에 이상한 흔적이 있다고 가보라 하는 것이다. 여기저기를 파헤치고 들쑤셔 놓았다는 것이다. 우리집 개들이 간혹 쥐를 잡는다고 사과나무아래를 파헤치긴 하는데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며칠 전 풀을 벨 때는 아무이상이 없었다. 무슨 흔적인가 하며 밭으로 가보았다. 이를 우짜노. 멧돼지 흔적이었다. 지렁이를 잡아먹는다고 밭 구석구석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그동안 동네 다른 사과밭에 멧돼지가 들어와서 피해를 줬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우리 사과밭에 멧돼지가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실제로 작년 이때쯤 우리 고구마 밭 인근에 있는 사과밭에 들어온 멧돼지를 엽사가 직접 잡아가는 것을 보기도 했었다. 다행이 아직 사과에는 피해를 끼치지는 않았지만 언제 피해로 이어질지 알 수없는 상황이다.
밭 전체가 산과 길게 이어져서 당장 울타리를 칠 수도 없는 상황이고 개를 갖다 놓으려 목줄을 쥐고 부르면 여태껏 한 번도 묶여본 적 없어 눈치를 채고 도망부터 치는 녀석들이라 그것도 안되겠고, 할 수없이 당분간 순찰을 돌기로 했다.
첫날, 해질녘부터 시작한 올해 사과나무 마지막 소독을 마치고 나니 저녁 9시였다. 뒤집어쓴 약을 씻고 간단히 저녁을 먹고 시계를 보니 밤10시 반이었다. 신발끈을 조여매고 물푸레나무 지팡이와 손전등을 들고 이마에 라이터를 달고 개 두마리를 앞세워서 밭으로 향했다. 밭에 이르러 나무 사이사이에 강한 불빛이 비치는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춰보았지만 아무 물체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개 한마리가 컹 하고 짖으니 내 앞에서 시커먼 물체가 불쑥 튀어나왔다. 불과 5미터 정도 라이트를 비췄다. 멧돼지였다. 70~80kg 정도는 되어보였다. 녀석도 놀랐는지 강한 라이트 불빛 때문인지 멈칫하고 있었고 개들도 생전 처음 보는 물체에 곧바로 공격을 못하고 망설이는 듯 했다. 손에 든 물푸레 지팡이로 내려치려는데 녀석이 후다닥 도망을 쳤다.
물푸레 지팡이는 오래전부터 혼자 등산갈 때 산속에서 야생동물을 만나면 때려잡으려고 만들어서 갖고 다니는 것이다. 가볍고 단단하여 호신용으로 아주 좋다. 개들도 함께 뛰고 나도 라이트를 비추며 쫓았지만 멧돼지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한참 후 개들의 눈빛이 어둠속에서 비쳤다. 녀석들을 부르자 혀를 길게 빼고 헉헉거리며 달려왔다. 고생많았다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사과 따려면 석 달이나 있어야 한다. 언제 내려올지도 모르고 어디로 올지도 모르는데현재 밤11시40분 초저녁에 한차례 순찰을 돌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 또 한번 올라 가봐야겠다. 저놈의 멧돼지 우째 잡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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