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성수기다. 펜션에 손님이 많이 오니 바빠졌다. 입추까지 많은 객실이 예약되었고 말복까지 이어질 추세다. 십수년전 귀농하고 집에 놀러오는 친척과 친구들을 위해 지은 사랑방을 늘려 펜션으로 운영 하고 있는데 남들 다 놀러가는 휴가철에 나는 놀러가지 못한다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굳이 멀리가지 않아도 마을 앞에 맑은 엄천강이 흐르고 시원한 계곡이 가까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여름과 한겨울에 돈을 벌고 있는 셈인데, 한 여름에는 펜션 손님을 받고 한겨울에는 곶감을 말린다.
도시에 살다가 시골로 귀농하게 되면 손을 많이 치게 된다. 일가친척은 물론이요 친구(의 친구 또는 가족), 동창(의 가족 또는 이웃), 직장동료(의 가족), 거래처 사람(의 동료), 군대동기(의 가족), 서클동료(의 가족)에 사돈 팔촌의 옆집에 사는 홍길동씨(의 가족)까지, 아무개가 지리산 오지마을에 살고 있다 카드라는 소문에, 거기는 반달곰도 내려온다 카드라 하는 소문에 한번 씩 찾아와 보게 된다. 시골 오지라고 언제 다시 와보게 될지 모른다고 (살아생전에 다시 못 올 것 같은 생각이 드는지) 하루 이틀쯤 묵어간다. 지리산 구례에 귀농한 모님은 전직 기자인데 귀농 3년 동안 찾아온 손님이 무료 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전직이 기자였고 워낙 발이 넓은 사람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귀농한지 15년째인 나도 돌이켜 보면 적지 않은 손님을 쳤다. (정확히 말하면 아내가 손님을 쳤다.)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공자 말씀처럼 가만히 있어도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는 나는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다. 십년 만에 심지어는 삼십년 만에 소식이 닿은 친구가 찾아와서 친분을 확인하고 우정을 돈독히 해주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다만 내가 친구와 우정을 과시하는 동안 아내가 접대하느라 힘들다는 것이다. 처음 몇 년간은 불편하긴 하지만 아이들 방과 거실을 활용하여 손님 잠자리를 만들었는데, 손님이 잦다 보니 가족 모두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사랑방을 별채로 지었다. 손님이 오면 사랑방에서 자면 되니 잠자리 불편은 없어졌다. <어이~ 칭구야~ 이번에 만수랑 같이 주말에 내려갈께~ 얼굴 한번 보자~> <그래~ 좋지~ 이게 몇 년만이냐~ 근데 너희 둘만 오는 거냐?> <아니, 가족이랑 주말 여행겸 같이 가기로 했어~, 고기 많이 사가지고 갈께~> 사랑방 손님은 너나없이 마당에서 바베큐를 해먹는다. 비록 손님이 고기와 술을 사 가지고 오지만 고기와 술을 먹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만만치 않아서 손님 숫자가 많을 때는 아내 눈치가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친구는 시골 토종닭이 맛있다고 시골닭을 꼭 구해 놓으란다. 시골에 닭 키우는 농가가 더러 있으니 닭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닭만 구해 놓으면 자기가 다 알아서 장만할 것처럼 말해 놓고는 오리발 내미는 바람에 아무도 닭을 잡지 못해 되돌려준 적도 있다.
지금 나는 객실이 4개 있는 펜션을 하고 있다. 사랑방을 더 늘려 아예 펜션 간판을 단 것이다. 이제는 동창들이 단체로 놀러 와도 큰 부담은 없다. 한 때는 친구들이 놀러 오겠다고 하면 아내 눈치가 보였는데 펜션 간판을 달고 나니 한결 낫다. 친구는 친구고 영업은 영업이니, 내가 사랑방에 펜션 간판을 단 것은 귀농 9단의 절묘한 한 수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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