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배부르지 않고 새끼를 낳는 개는 없다. 두달 전 나에게 순수한 사랑을 고백해온 이웃동네 변견 칠복이를 내치고 주인님이 정해준 훌륭한 가문의 신랑과 혼례를 올렸지만 내 배는 불러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주인님은 내가 임신을 한 줄 알고 있었고 출산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단지 내가 혼례를 올렸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 사실 말이 혼례지 나는 이런 식의 혼례는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한 때 도그 쇼에서 챔피언을 먹었다는 신랑과 인공수정이라는 이상한 방식의 짝짓기 아닌 짝짓기를 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칠복이랑 몰래 도망이라도 가서 전통 방식으로 거시기 했을 것이다. 아무리 혈통이 좋고 가문이 좋아도 그렇지 개는 개답게 거시기 해야 하는 것이다. 개의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인간의 개무지 함이란 참으로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다. 지난달에 내가 풀을 뜯어 먹고 토했던 적이 있는데 어리석은 주인님은 내가 입덧한다고 좋아라 하더니 그 뒤로 나의 임신을 확신하게 되었다. 어쨌든 그 일로 인하여 나에 대한 주인님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내가 새끼를 가졌다고 믿은 주인님은 나에게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게 대해 주었고 산모가 잘 먹어야 한다며 평소에 안주던 간식도 수시로 던져주었다. 그리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도 내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싸랑아~” 하며 콧소리로 노래하듯 불렀다. 그러면 나는 몸을 최대한 낮추고 꼬리로 마당을 쓸면서 주인님의 부름에 화답하곤 했다. 그런데 해산 날짜가 지났는데도 애기가 나오지 않으니 주인님은 수시로 나를 뒤집기 시작했다. 주인님은 나를 뒤집고는 부르지도 않은 배에 손을 얹고는 애기가 배를 차는 거 같다고 하다가도, 내 배가 생각처럼 부르지 않으니 뒤늦게 의심은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인님은 이번에 친정에 놀러온 내 딸 쿠키의 언니 벼리양에게 내가 임신을 한 거 같으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초딩 3학년인 벼리양은 처녀인 쿠키 배랑 내배가 다르지 않으니 새끼는 없다고 선고를 했고 어리석은 주인님은 맨붕이 되었다. 고백컨데 내가 주인님의 어리석음을 부추기기는 했다. 갈비가 묵고 싶으면 괜히 바닥을 긁어 출산 징후로 오해케 해서 비싼 갈비를 얻어 묵었고, 입맛이 없다고 투정해서 사료도 더 고급으로 바꾸게 했다. 나에게 이런 교활한 면이 있을 줄을 사실 나도 몰랐다.ㅋ 어쨌든 나는 어리석은 어른들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하고자 하는데 절대 견변 철학이라고 개무시 하지 말고 새겨 들어줬으면 좋겠다. 어른들이여~제발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어린 아이도 한번 보고 내가 임신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아는데 다 큰 어른이 알 수 없었던 이유는 딱 한 가지, 어른은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기 때문이다. 가엾은 주인님. 내 배가 홀쭉한데 우째 내가 애기를 낳을 거라고 기다리고 있었는지... 하지만 내가 바닥을 수시로 긁어 교활하게 주인님을 속인 것은 솔직히 미안해서 오늘 아침엔 주인님에게 사과와 화해의 뜻으로 앞발로 어깨를 툭툭 쳐주고 뽀뽀도 해줬더니, 입 냄새 난다고 궁시렁 대면서도 크게 싫지는 않은 모양이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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