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었습니다. 전 정부에서 발탁되었지만 오버스펙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화려한 경력에 전문성을 갖추어서인지 윤석열 정부에서도 통화, 금융정책을 지휘하면서 사회, 교육문제에도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하던 이 총재가 난국을 타개할 총리감으로 주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영국의 유력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계엄령을 선포했던 것에 대해 “불필요하고 상상할 수 없는 실수”이자 “부끄러운 일”이라고 토로한 것은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냉정하고 적확한 평가입니다. 딥페이크(deepfake)는 인공지능기술인 딥 러닝(deep learning)에 가짜(fake)를 더한 말로, 인간의 이미지를 합성하는 기술을 의미하는데 실제로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구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할 위험한 기술입니다. 이 총재가 “처음에는 방송국 해킹으로 인한 딥페이크(불법 합성물)인 줄 알았다”라고 했을 정도로 소설이라면 지나치게 과장된 설정이라고 여겨질 만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면서 정국은 혼돈에 빠진 채 2024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이번 비상계엄이 고도의 통치행위인지 친위 쿠데타인지는 수사와 탄핵 심판으로 가려지겠지만 일국의 대통령이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이를 규명하겠다고 선거관리위원회에 군대를 투입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의혹이 제기된 것이 5년도 더 지난 일이고 소위 극우 인사들이 무슨 신흥종교의 교리처럼 유튜브를 통해 끈질기게 주장하고 전파하면서 지지자들을 현혹해온 음모론인데 알고 보니 우리 대통령이 그 유튜버들에게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해 왔다는 것입니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이 국민의 힘을 망칠 것”이라고 예언했던 이준석 의원의 혜안? 이 새삼 놀라울 따름입니다.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TV를 통해 생생하게 현장을 목도하였기에 국민적, 법적 판단이 어렵지 않아 보였지만 언제나처럼 위정자들은 나라와 국민을 내세우며 적지 않은 시간과 국가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에는 아랑곳하지 않을 태세입니다. “뺏으려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들이 세를 모아 힘겨루기를 시작하고 아마도 법률가, 언론인, 그리고 정치평론을 업으로 하는 유튜버들만 즐거운 기괴한 모습이 2025년 상반기에 펼쳐질 것도 자명해 보이지만 어차피 민주주의는 비용이 많이 드는 제도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충분한 민주주의의 자본을 축적한 나라임이 증명되었다는 평가도 있다고 합니다. 시민들은 침착하게 대처하고 군인들은 자제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지금 미국을 포함한 세계를 향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떻게 고쳐 쓰는지 보여주고 있다” 한 외국 시민이 그를 취재하던 기자가 부끄럽다는 말을 했을 때 들려주었다는 말입니다. 흡사 K-POP 스타의 공연장을 찾은 듯, 스마트폰과 응원봉을 든 건강한 젊은이들이 광장과 거리를 메우고 노래를 부르며 민주주의를 말하는 모습이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촛불과 태극기가 충돌하는 광장에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10대들이 응원봉을 들고 “짠”하고 등장한 것이 이번 사태에서 얻은 귀중한 소득인지도 모릅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