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은 지방소멸의 위기 한가운데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50%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지방소멸하면 자연스럽게 연관되는 단어인 세대간 불균형, 청년세대 유출, 출산율 감소, 전입인구 감소 등 함양군은 그 무엇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더 청년세대가 중요하다. 청년세대는 지역의 활력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청년세대가 지역에서 재밌게 지내는 것은 청년인구 유출을 막고 청년세대 유입을 증가시킨다. 출산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청년들은 함양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함양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함양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함양 청년을 만나본다. <편집자주>
중학교는 함양에서, 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대학은 서울에서 다녔던 황지용씨.
황지용씨가 처음 칵테일바를 열게 된 건 대학교 졸업 직전이었다. 취업을 해야만 하는 시기였지만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거짓말을 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는 황지용씨. 첫 꿈은 군악대에서 품었던 음악가였다. 무대가 부족한 인디 뮤지션의 무대를 만들고 싶어 시작한 펍은 칵테일을 만들고 손님을 대하는 재미를 새롭게 찾아주었다. 첫 가게를 그만두고서 떠난 유럽 여행 중 아일랜드에서 들른 아이리쉬펍에서 접하게 됐다. 그곳에서 경험한 따뜻한 분위기와 독창적인 칵테일 문화에 매료된 그는 자신만의 칵테일바를 열어보고 싶다는 꿈을 은근히 갖고 있었다. 비가 많이오던 6월, 고향 함양에서 양파 까대기로 번 돈 100만원을 쥐고서 부산에 도착했을 때 발에 채이는 전단지가 있었다.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10만원 임대차 광고. 황지용씨 칵테일바의 시작은 양파 까대기 알바비로 시작한 부산의 장전역 근처 작은 상권 5평 남짓한 가게였다. 하루에 한두 명 오는 손님과의 만남을 반복하는 작은 공간이었다. 손님이 적은 초창기에도 그는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을 다하며, 칵테일의 맛뿐만 아니라 그와의 대화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명이라도 오시면 충분했습니다. 벽돌 쌓고 나무 판 올리고, 손님이 오면 그냥 웃으며 맞이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황지용씨가 3~4개월 외로운 운영을 반복하다 도전했던 건 ‘일요양주학교’였다. 양주와 관련한 수업을 열면 오후 2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술을 마시며 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단골이 많이 생겼다.
“4년 그렇게 운영하는 동안 굉장히 신났습니다. 그렇게 생긴 단골끼리 끈끈해지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우리끼리 운동회도 하고 파티도 하고요. 가게에 따로 온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2차를 나가기도 하고요”
황지용씨는 약 10년 동안 크래프트 칵테일을 고집해 온 실력 있는 청년 바텐더다. 그는 초창기부터 크래프트 칵테일을 제공해왔다. 과연 자기소개서를 쓸 때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던 지용씨에게 어울리는 장르다. 칵테일의 재료를 고를 때 공산품을 지양하며 쓰이는 대부분을 직접 만들거나 과일즙을 쓰더라도 생과를 짜서 쓴다. 시럽도 직접 만든다. 허브도 직접 재배하는 경우도 있다. 크래프트 칵테일은 단가를 위해 일괄로 만드는 칵테일과는 달리, 고품질의 신선한 재료와 수제 시럽, 허브 등을 사용하여 각 손님의 기호에 맞춘 맞춤형 칵테일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냥 제가 만드는 음료에 말 그래도 크래프트맨십(장인정신)을 좀 더 담는다는 거죠. 싸고 구하기 쉬운 대체품을 구하는 게 아니라 정말 써야 하는 재료를 써서 본연의 맛을 내주는 칵테일입니다. 메뉴에 사람을 맞추는 게 아니라 사람에 음료를 맞춰주는 거죠. 그러다보면 손님한테 나가는 음료 중에서 메뉴에 없는 것도 많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칵테일은 당연히 더 깊고 풍부한 맛을 제공한다. 특히 손님의 성향과 기호에 맞춰 술을 만드는 크래프트 칵테일은 손님들에게 특별한 만족감을 주고 있다.
"단골 손님이 많았고, 손님이 가게를 자주 찾을수록 그분들의 취향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죠. 그래서 추천에 따른 손님들의 만족도도 높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가게에 들어오는 순간 첫눈에 반했다는 손님과 불타는 연애끝에 결혼을 하게되고 아이가 생겼다. 신혼부부는 아이를 시골에서 키우기로 했다. 무작정 인터넷에서 집값이 가장 싼 시골집을 찾다가 발견한 진주 변두리의 전원주택으로 귀촌을 해서 1년간 살았지만, 내 땅이나 내 집이 아니면 귀촌도 힘들다는 생각에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귀촌을 위한 자금을 모으자는 생각으로 부산으로 돌아갔다.
함양에서의 새로운 도전
벌이를 위해 부산에서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130만원인 큰 가게를 운영했지만 바로 코로나가 찾아온다. 코로나의 여파로 사업이 실패한 후 4년간 모으고자 했던 금액만큼의 빚이 생긴 채 결국 가족과 함께 지용씨의 고향인 함양으로 이주했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이 다가왔고 더이상 귀촌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함양으로 오기 전에 처가가 있는 제주도에 정착하고 싶어서 찾아갔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원하는 단독주택은 대부분 전세대출이 나오지 않는 건물이더라고요. 예산에 비해 턱없이 비싼 제주도의 집값에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함양으로 오니까 다들 너무 친절하고 가는 곳마다 환영받는 기분이었어요. 제주도에서 받은 상처를 다 씻어내고 함양에 잘 정착할 수 있었어요”
함양으로 이주한 후 지금의 가게에서 낮에는 카페를, 저녁에는 칵테일바를 운영하고자 했으나 밤에 손님이 잘 다니지 않는 상권의 특성상 칵테일바는 현재 중단한 상태다. 카페에서는 재주 많은 황씨의 아내가 빵도 직접 굽고, 황씨가 햄도 직접 만들어 샌드위치를 판매한다. 맛에 대해서는 칭찬일색이지만 유동인구가 적은 특성상 카페 운영도 쉽지 않다.
손님이 잘 찾지 않는 공간에서 운영의 어려움을 느끼던 황 씨는,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아일랜드에서 경험했던 `아이리쉬펍`처럼 손님들이 약속 없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아이리쉬펍은 손님들이 약속 없이도 편하게 찾아와 대화를 나누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였다. 이러한 공간을 함양에서도 만들어보고자 그는 지역 주민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소셜 다이닝을 기획했다. 황지용씨는 소셜 다이닝을 운영하거나 공간을 대관해주는 등, 지역 주민들과의 연결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특히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단골 손님의 요청으로 카페에서 구순 잔치를 준비하거나, 지역 성과 발표회를 위한 케이터링을 제공하는 등 지역민들과의 교류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구순 잔치를 카페에서 열어드렸을 때 정말 뜻깊었습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가족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서 이곳이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사람들을 연결하는 공간이 될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또한 소셜 다이닝이나 와인 모임을 통해 카페를 다양한 활동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와인 모임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함께 와인을 즐기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며 지역사회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황지용씨는 앞으로도 함양에서의 삶을 지속할 계획이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목적이 있기 때문.
"저희는 아이들과 저녁에 시간을 보낸다는 우선순위를 지키면서 일을 계속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산에 있을 때는 제가 밤에 출근하니까 저녁을 같이 못 보냈거든요"
서울과 부산의 칵테일바에서 시작해 손님 적은 카페에서 지역의 일원이 되기까지, 황지용씨의 여정은 끝없는 도전과 적응의 연속이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함양에서의 삶을 채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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