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밀양 영남루가 60년만에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국보로 재지정되기까지 쉽지는 않은 길이었다. 2014년 첫번째 국보 승격을 추진했으나 검토과정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2016년에는 시민운동 차원에서 국보 승격 운동을 추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지난해 영남루를 사랑하는 시민과 여러 기관·단체의 노력이 더해져 마침내 국보로 재지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시민들의 염원으로 이뤄낸 사례는 또 있다. 충북 제천의 한벽루와 전북 무주의 한풍루는 시민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보물로 지정될 수 있었다. 진주 촉석루의 국보 승격을 위해 시민, 관계 전문가와 공무원이 함께 학술적·경관적·건축적·역사적 가치를 고찰·재정립하고 있다. 머지않아 국보로 반드시 승격될 것이라고 본다. 함양에는 역사와 문화적 유산을 한곳에 담고 우리에게 천년의 세월을 아우르는 소중한 의미를 지닌 학사루가 있다. 언제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이 누각에 자주 올랐다”하여 학사루라 불리었고, 통일신라시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관아에 딸린 건물로 옆에 객사가 있었고, 동쪽에는 제운루, 서쪽에는 청상루, 남쪽에는 망악루가 있었는데, 지방관리가 피로한 마음을 풀기 위하여 이곳에 올라 시를 짓고 글을 쓰며 몸과 마음을 달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숙종 18년(1692)에 다시 지었다고 전하며, 1979년에 지금의 위치인 함양군청 정문 앞에 옮겨 지었다. 특히 학사루는 1498년 무오사화(戊午史禍)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점필재 김종직의 유자광 시판 훼손 사건이 일어난 역사적인 장소이다. 또한 근현대에 와서는 함양초등학교의 전신으로 군수 박정규(朴晶奎), 신사 노두현(盧斗鉉) 등이 인재 육성을 위해 건립한 사립 함명학교(咸明學校)의 교사(校舍)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기 전까지는 함양초등학교의 교사 및 함양도서관으로 이용된 교육도시 함양을 상징하는 매우 뜻깊은 건물이다. 학사루의 명칭과 관련해서 연암 박지원이 쓴 “함양군 학사루기”에는, “고운을 사모하는 고을 사람들은 그를 사후의 호칭인 최문창후라 부르지 않고, 반드시 생전의 관직 호칭인 학사로 불렀으며, 송덕비를 세우지 아니하고 오직 누각에도 이름을 붙였다(不曰崔候, 而必號學士, 不曰孤雲, 而必稱其官, 不頌于石而惟樓是名焉)”고 되어 있다. 학사루는 1974년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그 역사적·문화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지정을 추진중에 있다. 지역민의 관심과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으로 학사루가 그 가치를 재평가 받는다면 보물 지정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화재는 단순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지역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학사루의 보물 지정은 단순히 문화재의 승격에 그치지 않고, 함양군의 정체성 회복과 자긍심을 높이는 데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이제 우리 함양군민이 나서야 한다. 이미 밀양과 무주의 예가 이러한 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함양군민이 모두 힘을 모아 함양의 정체성을 지닌 학사루의 보물 지정을 이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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