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거칠고 차가운 몸뚱이를 어루만지며 다시 일으켜 세워 주고 싶었습니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단풍 곱게 물든 서늘한 가을이 함양에도 찾아왔다. 그러나 지난주 유림면 유평마을만큼은 온기로 충만했다. 따뜻한 날에도, 뜨거운 날에도 이 산 저 산에 차갑게 죽어있던 나무들이 생명을 되찾고 새로운 모습으로 마을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나무들은 심나무(71, 본명 심문섭) 작가의 손길을 거쳐 유평마을에 전시되었다.
지난 10월26일부터 11월3일까지 ‘부활’이라는 주제로 열린 심나무 작가의 전시회에는 대략 70~80여점의 목공예 작품들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각자 개성 있고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이 다양한 작품들은 모두 죽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반듯한 나무가 아닌, 벌레 먹고 갈라지고 제멋대로 휜 삭은 나무들을 마치 의사가 환자의 환부를 메스로 도려내듯 흠집난 부위를 도끼와 자귀로 찍어내고 정신없이 깎아내며 만들었다는 심 작가.
“모두 몇백년 있다 노쇠해서 죽은 나무들이었죠. 아궁이나 난로에 들어갈 나무들. 살아 좋은 일 많이 하던, 이젠 쓰러져 쓸쓸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나무들을 다시 세워 그들에 대한 기념비를 만든 것입니다. ‘부활’로 주제를 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홍익대 미대 출신인 그는 삼성전자 디자인 연구소에서 디자이너로 일했고 이후에는 서양화가로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다 건축 일도 시작하게 됐는데 이를 계기로 비로소 나무 작업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오랜 시간 해왔던 그림은 거칠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나무 작업은 거친 작업에 가깝죠. 저는 혈기가 넘치다 보니 땀 흘리며 나무를 깎는 작업들이 너무 좋았어요. 특히 나무 향을 맡으며 내가 의도한 대로 나무가 깎여 만들어지는 과정의 감동이 굉장했거든요. 반발심이 강한 돌이나 철과는 달리 내가 치는 만큼 받아들여지는 그 느낌이 자연과 호흡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죠”
그렇게 나무 작업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된 그는 웅장하고 큰 건축 작업 보다 나무를 이용해 조형물 또 조상들이 해오던 전통 공예품을 현대 생활에 알맞게 만드는데 관심을 돌렸다. 새로운 디자인의 목기를 제작해 큰 주목을 받았지만 기나긴 도시생활에 지쳐 거제로 내려와 15년을 쭉 살았다던 심 작가. 바다를 보며 그동안의 복잡하고 힘겨었던 여정을 완전히 씻었고 1년전 지리산 함양을 찾아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제 나이가 이제 70대입니다. 여태까지 서울, 일산, 거제에서 생활하다가 70고비에 여기 들어온 것이죠. 다른 사람들은 ‘70이라는 나이에 무엇을 해’라고 말들 하시지만 저는 비로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진짜 활발할 때이죠.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자기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함양의 문화 발전을 위해 기여할 것이 무엇인가 고민도 하면서 생활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이번 전시회는 죽어있던 나무만이 아닌 심 작가 본인의 삶도 함께 ‘부활’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도 그의 유평리 작업실에는 찍히고 깎이며 다시 되살아나는 생명의 소리가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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