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에 준입자(quasi-particle)란 개념이 있다. 우주의 많은 물리 현상들은 입자들의 운동을 기초로 이루어지는데 이때 입자들끼리는 밀고 당기는 힘이 작용한다. 이처럼 어떤 입자가 수많은 다른 입자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움직이는 상황은 상호작용 없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원래 입자가 가지고 있던 기본적 성질들은 상호작용이 들어오게 됨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입자 원래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강력한 상호작용을 도입하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그 입자의 운동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해진다. 즉 원래의 입자를 포기하고 입자에 대부분의 상호작용을 함께 묶어 가상의 입자를 고려하는 것이다. 이렇게 고안된 개념이 바로 준입자이다. 즉 기존 독립적인 입자와 주변과의 강력한 상호작용을 묶어서 만들어진 가상적인 입자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학자는 준입자를 ‘달리는 말과 발생하는 흙먼지를 묶어 새로운 말’에 비유한 적이 있다. 이 경우 준입자는 대부분의 상호작용을 흡수하였기 때문에 실제 겪는 상호작용은 매우 약하다. 이는 물리학에서 친숙한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그 강한 상호작용을 입자로 흡수시킬 수 있느냐가 문제일 수 있다. 매우 정확한 수치적 방식으로 이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는 없다. 단지 평균적인 방식으로 다소 두루뭉술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이며, 이 방법은 오랫동안 매우 중요한 접근방식으로 개념화되었다.   나는 준입자의 개념을 접할 때마다 우리 전통 한의학에서 들은바 있는 장부(臟腑) 이야기가 떠오른다. 실제 장부는 5장6부로 불리는데 5장은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을 말하며 6부는 대장, 소장, 위장, 담낭, 방광, 삼초를 의미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동양의 의학적 개념에서 장부는 해부학적인 장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관점이다. 이에 대해 여러 다양한 연구와 주장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 관점은 동양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세계관과 유사성이 있다는 점에서 타당하고 일관성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학은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서양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를 시작으로 갈레노스를 거친 후 근대의학이 등장하면서 지금의 서양의학에 이르렀다. 서양의 근현대 의학은 과학혁명의 기계론적 세계관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즉 인체를 이루는 장기들 역시 기계적 대상으로 간주함으로써 질병이 나타난 국소적 부분을 집중 치료하거나 제거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이는 매우 뛰어나고 강력한 방식으로 많은 위급한 환자들의 생명을 구해 왔다. 현대인들의 수명이 이처럼 연장된 데에는 서양의학의 공로가 매우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동양은 『황제내경(皇帝內徑)』이란 의학서를 시작으로 그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 그 핵심은 장부들과 기타 신체부분들을 유기적인 연결고리고 파악하는 것이다. 즉 장부를 기계론적인 해부학적 장기들로 보는 게 아니고 유기적 관계론을 근거로 보게 된다. 간(肝)을 단순한 해부학적 간으로 보기보다 다른 장기들과의 관계성, 상호작용을 포함하여 이해하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준입자와 매우 유사한 관점이다. 독립적인 부분이 아닌 전체적 관계를 중심으로 하다 보니 다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데는 다소 미흡할 수 있으며 치료 역시 더딜 수밖에 없어 효과를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근본 원인 치료나 예방에 있어서는 탁월할 수 있다. 현재 인류는 늘어난 수명에도 암, 당뇨병, 치매 등 다양한 병으로 인해 건강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현대의 많은 병들은 부분적인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양이 간직해온 관계적 관점으로 질병을 대해야 한다. 즉 서양의 의학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준입자 개념을 통해 어려운 문제를 돌파했듯이 서양의 의학도 동양 의학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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