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중학교 교정 주변에 무궁화꽃이 한창입니다. 처음에는 몇몇 송이가 피는가 싶더니 곧 무더기로 피어나서 수수하면서도 고고한 자태를 보여줍니다. 특히 올봄에 옮겨 심은 어린 무궁화 스무 그루도 칠월 무더위와 장마 속에 어렵게 꽃봉오리가 맺히더니 마침내 몇 송이 꽃을 피웠습니다. 오뉴월 봄 가뭄 때 지극정성 물을 준 것이 통했나 싶어 반가움과 함께 보람도 느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무궁화가 당연하게 대한민국의 국화라고 알고 있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법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태극기 깃봉, 각급 국가기관 기, 군인·경찰 계급장, 훈장 및 각종 표창과 상장 등도 무궁화 문양을 사용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가 문장에는 태극 문양을 무궁화 꽃잎 다섯 장이 감싸고 있습니다. 또한 애국가에도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들어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래전부터 정부와 각급 기관에서 무궁화 문양을 활용하고 있으니, 무궁화는 이제 대한민국의 관습적 국화로 굳어졌습니다.
무궁화꽃은 빠르면 유월부터 피기 시작해서 시월 초까지 백여 일 동안 하나의 나무에서 이삼천 송이의 꽃이 핍니다. 무궁화의 색깔과 문양에 따라 단심계(꽃 중심부에 붉은 무늬가 있는 종), 배달계(순백색 종), 아사달계(단심이 있고 꽃잎에 무늬가 있는 종)가 있습니다. 꽃의 크기는 6~10cm이고 꽃잎은 흰색 또는 분홍색이며 암술과 수술 꽃대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꽃잎이 잔처럼 펼쳐집니다. 꽃이 질 때는 꽃잎이 오므라들면서 봉우리째로 땅에 뚝 떨어집니다. 이른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며, 다음 날 아침이면 어느새 나무 한가득 다시 활짝 꽃이 피어 있습니다. 그래서 피고 지고 또 피는 그 은근과 끈기의 정신을 기려서 배달겨레는 이 꽃을 무궁화, 즉 ‘다함이 없는 꽃’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피어나서 오늘 저녁에 지니 하나의 꽃으로 피어 두 개의 태양을 바라보지 않는 꽃이어서 왕조시대에는 충신의 일편단심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무궁화는 일상생활에 요모조모 쓰임새가 많았습니다. 나무껍질은 최고급 제지 원료로 꽃과 나뭇잎은 차나 약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리하여 무궁화는 여러 면에서 배달겨레 민족정신을 많이 닮아서인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무궁화 행진곡을 부르면서 제법 먼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무궁 무궁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 꽃/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 너도 나도 모두 무궁화가 되어/ 지키자 내 땅 빛내자 조국/ 아름다운 이 강산 무궁화 겨레/ 서로 손 잡고서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은 무궁화다(윤석중 작사 손대업 작곡)” 보무도 당당하게 무궁화 행진곡을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몇 살 때부터 했는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유년기 학마을 어귀에서 동무들과 심심풀이 그저 즐기는 놀이였습니다. 술래가 뒤돌아서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빠르게 외치고 뒤돌아봅니다. 박자와 리듬이 척척 들어맞습니다. 술래 뒤에 있는 아이들은 술래가 구호를 외치고 뒤돌아보기 전에 잽싸게 한 발씩 앞으로 움직입니다. 웃는 눈으로 뒤돌아보는 모습, 어떤 아이는 한쪽 다리를 든 채 서있는 모습, 또 다른 아이는 팔을 짝 벌린 모습 등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술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살금살금 조심조심 걸으며 움직이는 그 몸짓이 재미있습니다. 술래에게 움직임을 들키지 말아야 하며 최대한 술래 가까이 다가가야 하고 술래에게 잡히지 않도록 부지런히 달아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무궁화 행진곡’을 부르면서 등하교하기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로 인해 시나브로 체력은 길러졌고 나라꽃 무궁화는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지지 않고 영원히 피는 꽃’이라는 꽃말처럼 다볕골 청소년들도 인내와 진취성을 배우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다함 없이 자라나서 대한민국의 동량지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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