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련히 기억나는 첫 번째 화가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무지였던 중학생 시절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천재적인 화가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 대학생 때 프랑스 파리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 가장 가보고 싶었던 미술관이 피카소 미술관이었고 그곳에 가서는 피카소의 다양한 작품에서 일생을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닮고 싶었던 화가다.
91년간의 전 생애 중 80여 년을 미술에 바친 피카소는 회화, 조각, 소묘, 도자기, 시 등의 무수한 작품으로 20세기 현대미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소묘를 가르치던 아버지에게 10세가 되던 1891년에 그림을 처음 배울 때부터 이미 남달리 뛰어난 소묘 실력을 발휘했다. 아들의 비범한 재능에 놀란 아버지는 자신의 야망을 온통 아들에게 쏟으며 어린 피카소에게 모델을 구해주었고 13세에 첫 번째 개인전을 열도록 도와주었다. 1895년 가을 피카소의 가족은 다시 바르셀로나로 이사했으며 그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소묘를 가르치던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이후 1897년 가을 피카소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의 산페르난도 왕립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의 교수법이 따분하다고 느낀 피카소는 카페, 사창가 등을 배회하며 그곳의 생활을 그리는데 더 열중했으며 프라도 미술관을 자주 찾아가 스페인 회화의 진수를 접하게 되었다.
1900년 2월 그는 바르셀로나에서는 첫 번째로 전시회를 가졌는데 전시된 작품들은 카페에서 자주 모였던 친구들을 다양한 재료로 그린 초상화 50여 점이었다. 피카소는 적절한 작업환경과 파리를 경험하고 싶어 동료인 카를로스 카사헤마스와 함께 파리로 가서 몽마르트르의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피카소는 실연으로 의기소침해진 친구 카사헤마스 때문에 겨우 2개월 만에 스페인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1904년 봄 피카소는 파리로 영구 이주할 결심을 했다. 이 당시의 작품에는 정신적인 변화, 특히 지적, 예술적 환경의 변화가 반영되어있다.
1906년 말경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1907)이라는 대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여성의 신체를 심하게 왜곡시키고 얼굴을 가면처럼 그려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 작품은 미술사의 전통에 확고하게 기초해 있다. 이 작품은 충격적이고도 날카롭다. 여기에 묘사된 여인들은 전통적인 아름다운 여인상이 아니라 그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매춘부들인 것이다. 그 무렵 수집가들이 그의 작품들을 사들이고 있었으나 피카소는 이 작품을 둘둘 말아 여러 해 동안 내버려두었다.
피카소는 말년에 주로 미술사에서 주제를 구했다. 때때로 그는 과거 대가들의 작품을 변형 시켜보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듯했다. 그는 알트도르퍼와 마네, 렘브란트, 들라크루아, 쿠르베 같은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고 변형시킨 수많은 판화, 소묘, 회화를 남겼다. 그는 1973년 4월 8일, 91세의 나이로 프랑스 무쟁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은 특별한 고통이나 어려움도 없었고 살아생전에 많은 작품도 팔았으며 부유한 생활을 했다. 어릴 때부터 탄탄한 기초 교육을 받았으며 앞서나가는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피카소는 현대에서 롤 모델이 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자신만의 화풍을 끊임없이 새로운 미술을 추구했다. 그림을 처음 시작하거나 꾸준히 취미생활로 그림 그리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항상 기본에 충실 하라. 그러기 위해서 데생은 평생 해야 하는 미술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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