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푸짐하지. 노송나무 꼭짓점은 푸르디 푸른 하늘 꽁지를 찌르지. 오랜만에 기와지붕에서도 빛을 발하며 윤이 납니다. 햇살에 눈빛을 담급니다.’ ‘봄날에 녹아나는 것들이 이 나이에도 맘 설레게 합니다. 두툼했던 패딩점퍼보다 하늘하늘한 원피스 더 어울리고 롱부츠보다 하이힐이 더 어울리는 출근길 어여쁜 아가씨의 모습이 밝고 경쾌해 보입니다. 늘 하루는 선물이고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거의 매일매일 보내오던 카톡의 글이 없다. 얼마 남지 않았다던 그의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낭송가이고 시인인 그의 톡을 다시 읽어 내려간다. ‘화창한 봄날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날 느긋하게 늦잠을 부리고 있으려니 창가에 햇살이 간지럼을 줍니다. 몸은 느슨해지고 눈은 졸리는데 이놈의 햇살이 장난질을 하네요.’ ‘오랜만에 고개 들어 엷은 구름 낀 하늘을 감상해 보세요. 맑은 하늘빛과는 그 맛이 다르지만 오늘은 하늘 향이 있습니다. 장미 향, 라벤터 향, 레몬 향은 아니더라도 맑고 상큼한 향이 짙게 묻어납니다.’ ‘...오늘은 샘의 웃는 모습이 보고싶네요.ㅋㅋㅋ’ 밝은 마음, 특유의 장난기만을 느꼈다. 그 뒤로도 문자와 전화가 몇 번 오갔고 우리는 두어 번 만났다. 하지만 올해 첫 만남에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지. 그는 살이 많이 빠졌고 난 살이 많이 올라서 몇 년 전에 보았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몇 분만에 서로를 알아내고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 이후로도 문자 연락은 끊이지 않았고, 얼마 전에는 근처에 갈 일이 있어서 전화를 했다. 신호가 스무 번 가까이 울렸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한참 후에 걸려온 전화. “치료를 받고 있었어. 호스피스 병동이야. 작년에 시한부 판정을 받았는데 몇 달 못 산대” 두둥! 가슴에서 머리에서 천둥이 친다. 할 말을 잃어버린 채 멍하니 있으니 전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그런다. “마지막 가는 길 즐겁게 살다 가야지. 지나가는 길 있으면 한 번 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쓰이고 전화기에 손이 간다. 얼굴 보러 가야 되는데 가서 무슨 말을 하지?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결정하지 못하고 차일 피일 미루다 애꿎은 시간만 흘렀다. 며칠 전에 다시 전화를 했다. 아, 어떻게 된 거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길게 늘어져 누운 그림자 밟히며 밟히며 먼저 길을 나섭니다. 어제도 그랬던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신호등 대기하는데 무슨 생각 깊었는지 녹색 신호가 끝난 것도 모르고 서 있습니다. 웃어야 하나? 어쩌지? 그냥 피식 웃습니다. 그래도 그림자는 곁을 지키고 나만 바라봅니다” 다시 그가 보내었던 글을 읽었다. 그림자가 곁을 지키고 바라본다고. 그래 좀더, 좀더 오래 그림자가 그를 지켜주기를 바란다. 아직 60대 초반인 선생님. 한창 삶을 살고 인생을 느긋하게 즐길 나이인데 아직은 아니다. 나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난 웃을 수가 없는데.... 이번 주말엔 꼭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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