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은 총 262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 일이라면 항상 발벗고 나서는 마을이장이들을 우리는 만나볼 수 있다. 주간함양은 ‘우리 마을이장들을 소개합니다’ 코너를 연재해 마을지킴이 이장들을 매주 소개하고자 한다. 각 마을이장으로부터 마을 현황과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어본다.   효리마을(우명리) 정우상 이장(74)   효리마을은 조선 초기 남원양씨가 이곳에 들어와 터를 잡고 대를 이어 살아왔다. 그 뒤 양씨가 쇠퇴하고 하동정씨가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다. 마을 지형이 소가 우는 형세라 하여 소울리라고 부르게 되었고 효자가 많이 났다하여 효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효리마을에는 13년차 정우상 이장이 마을을 이끌고 있으며 91가구 137명의 주민들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 효리마을 앞에는 대형 트럭이 자주 왕래하면서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어 정 이장은 걱정이 많다. “거창군 신원에서 모래를 싣고 오는 대형 트럭들이 마을 앞 도로를 지나면서 추월하는 등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에 면사무소에 연락하여 현수막을 설치하였고 해당 업체와도 소통 중에 있다” 과거 효리마을에는 품앗이 개념이 자리 잡아 모든 농사를 주민들이 함께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모두 개인이 농사를 짓는다. “과거에는 동네 주민들끼리 삼삼오오 힘을 모아서 농사를 일구었기에 힘이 들더라도 재미도 있고 보람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농사지을 사람은커녕 마을에 사람도 없어 큰일이다. 또 마을 대표 작물인 사과는 이상 기후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작황이 좋지 못해 걱정이다”   가성마을(우명리) 박헌영 이장(63)   가성마을은 조선 성종 때, 삼척박씨 삼형제가 삼척에서 안의를 거쳐 승안사지로 들어간 후, 앞이 막히고 들이 없자 산을 넘어 양지바른 들과 평지인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형곡이라 불리던 이 마을은 골짜기가 아름답다고 하여 ‘가사곡’이라 이름 붙여졌고 이후에 가성마을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가성마을은 올해로 9년째 박현영 이장이 마을을 이끌고 있다. 박 이장은 마을 주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현재 마을에는 53가구 78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서로 돕고 협력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가성마을 상·하수도 사업 중 하수도는 이미 완료됐지만, 상수도는 주민들의 반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는 마을 자체 물이 워낙 깨끗하여 굳이 상수도를 설치할 필요가 없다는 주민들의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가성마을은 대부분의 마을숙원사업은 마무리된 상태이며 마을 위 저수지 확장만이 남아있다. “마을 농사를 위쪽 저수지를 통해 물을 공급받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매번 군에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명쾌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 빠른 시일 내에 저수지가 확장되어 주민들의 불편이 없어지길 바란다”   서평마을(원평리) 임준섭 이장(82)   서평마을은 하원마을이라고 불렸으며, 처음 진양 하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전해진다. 15세기에 나주임씨가 들어와 대대로 살아오고 있으며 중종 때에는 여양진씨가 입촌하여 살아오고 있다. 남계천을 젖줄로 하고 있는 이 마을은 들판에 피가 많이 자생하여 피들이라는 뜻으로 서평이라 이름하게 됐다. 서평마을에는 11년 차 임준섭 이장이 마을을 이끌고 있으며, 88가구 138명의 주민들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평평하고 넓은 면적을 가진 서평마을은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마을회관과 노인회관을 갖추고 있어 다양한 행사와 모임이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현재 서평마을에는 특별한 숙원사업은 없고 지난해 마을 만들기 사업이 선정되어 올해부터 분격적으로 실시될 예정이다. “우리 마을은 현재 특별한 숙원사업은 없다. 최근에 마을 만들기 사업이 선정되어 올해부터 실시될 예정이다. 총 사업비 21억 원 가량을 지원 받아 기초적인 보수 공사가 마무리되면 더욱 주민들의 정주 여건이 개선될 것이다” 마을 만들기 사업은 마을 안길 빈집 철거와 재래식 화장실 개조 등을 포함한 기초적인 인프라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4년 간의 공사를 통해 서평마을은 더욱 살기 좋은 환경으로 변모할 예정이다.   남계마을(원평리) 안동근 이장(64)   남계마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남계서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원촌동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불리게 된 이곳은 남계서원이 있어 남계마을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16세기 개암 강익이 일두 정여창의 학덕을 기리고 후학을 양상하기 위해 남계서원을 건립한 후 관리인의 집들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남계마을에는 7년차 안동근 이장이 마을을 이끌고 있으며 38가구 72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 남계마을은 전통적인 전설과 자랑거리가 많다. 마을 앞에는 청계서원과 남계서원이 있고 맞바위와 새바위라는 두 바위는 마을의 대표적인 전설로 남고 있다. “맞바위와 새바위는 남계서원과 직선으로 이어져 있으며 맞바위가 바로 보는 방향으로 마을에 좋은 일들이 생긴다는 전실이 있다” 모든 마을 어르신들을 부모님이라 생각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보필을 자차하고 있는 안 이장은 봉사를 강조하고 있다. “마을 모든 사람들을 엮어보면 모두 한 가족이다. 그렇기에 이장을 역임하면서 마을 어르신들을 내 부모님이라 생각하고 항상 최선을 다해서 보살피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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