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총선 때마다 ‘정책이 실종됐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이번 총선은 더욱 심각한 것 같다. 그나마 나오는 공약들을 보면, 개발공약이거나 졸속적인 공약들이 많다. 국가의 미래나 시대적 과제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담고 있는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역문제와 관련해서도 ‘지역소멸’이라는 단어는 많이 사용되지만, 수도권 일극집중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은 제시되지 않는다.
그래서 총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개혁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할 상황이다. 특히 주권자인 국민들 사이에서부터 그런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고위관료들에게 기대해서 될 일들이 아니라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증명됐다.
지금 대한민국이 부딪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흔히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라는 말을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약자들에게는 ‘민주주의가 밥’이다. 민주주의가 잘 안되면 기득권자들이나 ‘가진 자’들을 위한 정치·행정이 벌어진다. 그 결과는 다수 국민들의 삶이 힘들어지고 불안해지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이 딱 그렇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꼽는다면, 풀뿌리에서부터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해결할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다. 특히 지역문제는 그렇다.
모든 중앙집권적 국가는 지역을 대상화하기 마련이지만, 대한민국은 더 심하다. 민주국가가 연방제를 채택하거나 지방분권을 강조하는 이유는 ‘중앙집권으로는 지역주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상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극심한 중앙집권주의 국가이다. 게다가 ‘서울 강남’을 사고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정치인과 고위관료, 기업인, 기득권 언론인들이 대한민국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해 왔으니, 비수도권 지역의 문제나 농촌지역의 삶의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민주주의 강화방안은 풀뿌리의 권한과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중앙에 힘이 쏠려 있는 구조를 풀뿌리에 힘이 있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지역 내부에서도 시청·구청이나 군청에 쏠려 있는 권한과 예산을 더 풀뿌리로 배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읍·면의 자치권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1961년 5. 16 쿠데타 이전에는 우리나라도 농촌지역의 기초지방자치는 읍·면을 단위로 하고 있었다. 미국, 유럽, 일본도 농촌지역은 읍·면 정도를 기초지방자치단체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읍·면의 주민들이 자기 지역의 주거, 의료, 교육, 돌봄, 교통, 문화, 환경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찾아 나갈 수 있다. 권한과 예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읍·면이 자치권없는 하부행정조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농촌지역의 인구감소와 삶의 질 저하에 대한 대책 수립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역 내부에서는 군청이 중앙집권적인 기관이다. 군청에서 읍·면의 실정을 제대로 알기도 어렵고, 하향식으로 사업이 결정되는 방식으로는 읍·면, 특히 면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도시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동(洞)을 지방자치단체로 하기는 어렵지만, 동에서도 주민들이 일정하게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근린자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동네 구석구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주민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동별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 또는 주민자치위원회의 역할도 강화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 풀뿌리에서부터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되기를 기대했지만, 지금 대한민국 현실에서는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강화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문제, 지역의 문제를 풀 수 없기에 총선 이후에라도 본격적으로 읍·면 자치권 확대와 주민자치 강화가 논의되기를 기대한다.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는 정치일정도 있기 때문이다.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방안도 있다. 읍·면 자치권의 경우 읍·면장 직선제부터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주민들이 선출한 읍·면장을 중심으로 주민자치회, 이장단협의회 등 농촌지역에 있는 주민조직들의 의견을 모아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해나가고, 더 폭넓은 자치권 확대의 기반을 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에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도입하기 어렵다면 가능한 곳부터 순차적으로 실시할 수도 있다. 도시지역의 주민자치 강화도 준비가 되는 지역부터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