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장미 바람이 불어 심다보니 너무 많이 심었습니다. 그 장미가 그 장미 같은데 왜 자꾸 심느냐는 아내 말을 한 귀로 흘리고 계속 심었는데 막상 오월 중순이 되어 장미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니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합니다. 아내 말이 맞았습니다. 더 늦기 전에 목록을 만들고 대대적으로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예외는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일단 살려야 할 장미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장미는 자동적으로 정리 대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실 공식적(형식적)으로는 장미 살생부가 없는 겁니다. 살생부를 만들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이 교묘한 방법은 사실 공식적으로는 블랙리스트를 남기지 않는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지요. 어쨌든 장미 화이트리스트 1번은 프랑스 덩굴장미 에덴로즈85입니다. 1985년에 소개되었다고 해서 85가 붙었는데 막상 소개될 당시에는 호응이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만 차차 인정을 받아 장미명예의 전당에 입성까지 한 명품 장미입니다. 작년 봄에 묘목을 심고 올해 첫 꽃이 피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멋지게 피었습니다. 상상 이상 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무릎 높이로 겨우 자라 수십 송이 정도 꽃을 피우고 있지만 내년에는 펜스를 장식하면 장미 천국이 되리라 믿습니다. 정원에 100그루 장미 심을 땅이 있으면 100품종을 한 주씩 심을 게 아니라 에덴로즈85를 100주 심으라고 권하겠습니다. 살려둘 목록 2번은 독일장미 가르텐슈파스입니다. 정원의 즐거움이라는 이름처럼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꽃으로 매직쇼를 하는 듯합니다. 이 장미의 가장 큰 덕목은 꿋꿋함입니다. 지난해 장미 바람이 불어 비싸게 구입해 심은 영국 오씨 장미들은 대부분 수그리입니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붙들어 매기 바쁩니다. 비라도 며칠 오면 모두 수그리, 후드득, 맨땅에 헤딩하기 등 실망스러운 반면 가르텐슈파스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꼿꼿하게 얼굴을 들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연금술사라도 되는 듯 꽃이 피고 시들때까지 꽃색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공연을 보는 듯합니다. 병충해에 강한 건강미까지 더해 이름 그대로 정원의 즐거움입니다. 이어지는 꼭 살려야 할 목록은, 라리사, 크리스티나, 로알드달, 올리비아 로즈 오스틴, 로얄바카라, 알키미스트, 레이디오브샬롯, 스트로베리힐, 밧세바, 엠버썬, 포플리나, 벤타이머 골드, 테라코타, 랩소디인블루, 벤자민브리턴, 뉴돈, 쟈뎅드프랑스, 몬자뎅마메종, 에버골드, 라디오, 안젤라, 토긴이바라, 로소만자농, 밀온더플러스, 함부르크피닉스, 오클라호마, 로젠파치나시옹, 오해피데이, 문라이트, 알바메이딜란트, 빙고 메이딜란트, 맛츠리, 하루가제, 와라베우타, 치펜데일, 사일러스마너, 포리오, 라이온스로즈, 그 외 이름을 모르는 장미 등등인데 어찌된 건지 우리 집에 있는 장미가 다 나온 것 같네요. 아무래도 대대적인 정리는 내년에 다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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