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만남은 크게 ‘숙명적 만남’과 ‘선택적 만남’으로 나눌 수 있다. 숙명적 만남은 부모, 집안, 국가 등과 같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만남이다. 반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만남도 있다. 우리가 훌륭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좋은 만남이 있어야 한다. 먼저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다. 지난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원까지 20년이 넘는 시간을 선생님들에게 배웠다. 그러나 그 많은 선생님 중에서 특별하게 생각나는 몇 분이 있다. 또 어떤 분은 가끔 연락하며 지내는 분도 있다. ‘좋은 선생님’이란 어떤 분일까? 필자의 생각에는 ‘내 삶에 영향을 주고 방향을 잡아 주신 분’이다. 힘들어 지쳐 있을 때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 분,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해 방황하던 시절 흐리지만, 방향을 제시해 주신 분, 인생과 학문의 고비마다 가르침을 주신 분이 필자에게는 좋은 선생님으로 남는다. 좋은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필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좋은 친구(동역자, 공동체)”를 만나야 한다. 이 땅의 누구도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좋은 친구, 동역자가 필요하다. 인생을 살면서 함께 생각하고, 대화하고, 행동할 수 있는 친구, 동역자, 공동체 등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사회적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일찍이 철학자들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사회를 배우고, 사회 속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이런 관계를 통해 사회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을 필자는 ‘친구’ 또는 ‘동역자’라고 표현하고 싶다. 좋은 친구, 동역자는 자기 생각을 함께 사회에 투영하고 관계 맺는 삶을 이룰 좋은 공동체가 필요 한 것이다. 셋째는 “좋은 책”을 만나야 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신간 도서 발행 총수는 4만1107종이라고 한다. 하반기까지 합치면 일 년에 약 80만 종 이상의 신간이 발행된다는 말이다. 작가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책의 홍수 시대다. 이런 책의 홍수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책 읽기를 할까? 많은 사람이 ‘정보를 위한 책 읽기’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 책을 읽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이런 책 읽기는 단기적 유익에 집중한 것이다. 또 다른 부류는 ‘재미를 위한 책 읽기’이다. 이런 독서는 순간의 유희를 즐기는 책 읽기다. 필자는 이런 두 유형의 책 읽기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좀 더 진지한 책 읽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에는 이런 책 읽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마지막 책 읽기는 ‘질문하는 책 읽기’이다. 자기 삶의 질문을 가지고 책을 읽는 것이다. 인생의 질문을 던지며 책을 찾고 읽을 때 우리는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다. 작가들은 “좋은 책은 스스로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순간적 인기나, 순간의 답이 아니라, 좋은 책은 인생과 사회와 역사에 스스로 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좋은 인생을 살고 싶다면 좋은 선생님을 찾아가고 좋은 친구와 동역자를 만나라. 그리고 좋은 책을 가까이에 두고 읽어라. 이것이 좋은 삶, 훌륭한 삶을 사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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