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면에 위치한 함양 등구사지 학술조사 최종보고회가 1월16일 함양군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진행됐다. 특히 이번 학술조사의 대상이 된 등구사지는 예부터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과의 관련성이 구전되고 있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함양군과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가 진행한 이번 최종보고회는 과거에 진행된 등구사지 발굴조사와 이번에 실시한 정밀지표조사와 표본조사를 포함해서 정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가 진행한 정밀지표조사와 표본조사를 통해 연화문, 보상화문, 범자문, 유가심인도문 막새가 출토되었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 말기에 해당하는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확인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구전되고 있는 시기인 가야시기 및 삼국시대 유물이 미확인 된 것이 특징이다. 표본조사에서는 고려시대 건물지가 1동 확인되었다. 현재 등구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그대로 보여주어 9세기 말 축조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보물 248호인 대구 동화사 금당암 삼층석탑과 크기 및 조각양식이 매우 유사하다. 1945년 훼손되었던 것을 2000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결구 복원한 것으로 일부만 남아있다.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조성했다고 전승되는 축대의 경우 2022년 정비 복원 되면서 과거의 형태를 명확하게 확인하긴 어렵게 되었다. 피난동굴로 전해지는 배수구의 경우 깊이는 22m 정도이며 내부 가장자리가 붕락되어 전체길이는 확인하기 어렵다. 석축을 전공한 박종익 경상남도 문화재위원은 “등구사지는 산지가람 사찰이기 때문에 배수를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며 “용도를 생각하면 배수구의 용도가 확실하지만 보통의 배수구는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구멍이기 때문에 등구사지 축대의 배수구는 건축사적으로 의미가 매우 크다”고 밝히며 피난동굴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전 김해국립박물관장 임학종 경상남도 문화재위원은 “지표조사와 표본조사에서 가야유물이 출토된 것이 없다. 하지만 표본조사는 사실 100분의 1을 밝혀낸 것이다. 합수되는 지역에 사찰이 형성되는 경우를 고려했을 때 서찰이 먼저 창건되었을 가능성을 바탕으로 발굴조사를 해보면 될 것”이라며 “하지만 가야와 관련한 기록은 구전에만 근거하고 있다. 가야에 너무 매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등구사 주지 인담 스님은 “등구사는 지역의 지명과 관련되어있을 정도로 유서 깊은 사찰이다. 구형왕과 관련한 구전도 많기 때문에 그 비밀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종보고회에 참석한 김재웅 경남도의회 문화복지위원장은 “함안의 말이산고분군 역시 주변의 관심과 노력으로 문화유산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등구사지 역시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관심을 두고 발굴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등구사는 해인사 성보박물관의 등구사사적기에 따르면 신라 무열왕 2년(653년) 창건되었고 여말선초 소실되었다가 1709년에 중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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