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남부에는 오로빌이라는 국제 공동체가 있다. 이 공동체엔 현재 50 여 개 국적의 사람들이 자원봉사 자격으로 거주하고 있다. 거주자 뿐 아니라 자원봉사 또는 방문 체험을 위해 세계 각지에 들어온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로빌은 한국에 이미 상당히 알려져 있어 오로빌을 체험한 한국인들의 수는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오로빌이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던 것은 1997년 경 KBS에 의해 방영된 공동체 탐방에 관한 다큐를 통해서였다. 이후에도 오로빌에 관한 다큐가 한국의 여러 방송국에서 지속적으로 제작 방영되어 왔다. 오로빌에 대한 일반 여행자들의 관심과 발길 뿐 아니라 여러 대안학교들도 코로나 기간의 2년 동안을 제외한 지난 15여 년 동안 매년 중고등학생들을 데리고 와 오로빌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인도로의 입국에 관한 규제가 완화되었던 작년에 필자는 비자 신청 인터뷰를 위해 영사를 방문했었다. 영사가 대뜸 “무슨 이유로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오로빌에 가는 걸까?”라고 물어 왔다. “글쎄, 인도에 대한 입국 규제가 풀리면서 그간 누적된 오로빌 방문 희망자들이 한꺼번에 향하는 거겠지”하고 대답해 주었다. 이번에 오로빌에 들어와서 놀랐던 사실은 코로나 발발 초기 2개월을 제외하고는 오로빌에선 마스크 착용에 관한 규제가 없었으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시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필자는 작년 하반기 오로빌에 들어오면서 백 여 개의 마스크를 바리바리 가방에 쌓아 가지고 왔었다. 지금 그 마스크들은 창고에 쌓여 있다. 오로빌에선 마스크를 쓰는 사람도 없거니와 코로나에 전염이 되었어도 집에서 자가 치료를 하면서 가벼운 감기나 심하면 독감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다. 마스크 착용의 생활 의무화에 어느덧 깊이 길들여져 있던 필자는 오로빌에서 생활하는 첫날부터 한동안 심리적 신경적 혼동을 겪어야 했었다. 숙소에서 나와 길에 나설 때마다 뭔가 잊은 듯 개운치가 않고 딱히 이유가 없는 촉박한 느낌의 스트레스가 올라오곤 했었다. ‘여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야’라는 내면 음성을 내어서야 마음이 안정되곤 하였다. 이는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맞추어 밥을 얻도록 훈련되었다가 종소리만 들려주어도 침을 흘리는 조건반사의 증후와 다를 바 없었다. 코로나의 기간에도 이렇게 외부 사회나 인도 정부의 규제 등에 의해 영향 받지 않고 오로빌이 일상의 지속성을 자치적으로 지켜 낼 수 있었던 젊은 패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또한 코로나의 기간 중에도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은 오로빌로의 자원봉사 비자 신청을 주춤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빌에서는 어떤 활동이나 노동을 할 때 돈에 의한 보수 개념이 없다. 가령 오로빌 농장에서 아무리 장시간 일을 해도 노동에 대한 대가로 제공되는 것은 간단한 아침과 점심 식사가 전부이다. 그럼에도 도시로 가서 일자리를 찾거나 자격증 또는 시험 준비 등을 통해 취업을 도모하는 대신 넉넉하지 않은 경비로 오로빌에 들어와 열심히 자원봉사를 하는 젊은이들은 오로빌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경험하는 것일까? 필자의 소견으로 미리 이런 답을 써 본다. ‘오로빌에서는 젊은이들이 꿈을 꿀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환영을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젊은이들의 패기를 말릴 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해서 오로빌은 코로나도 아랑곳 않고 자기 일상을 지켰던 것이다’필자는 오로빌의 젊은 패기들이 어떤 꿈을 꾸면서 어떠한 방향으로 삶을 실험하고 완성하고자 하는 지에 대해 다음 컬럼에서 가능한 한 소상하게 나누어 드릴 것을 기약하면서 여기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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