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과 두 젊은 물리학자들이 제시한 EPR 역설은 코펜하겐 해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강력한 공격이었으며 이에 대한 보어의 방어는 공격을 잠재울 수 있을만큼 확실하지 않았다. 이 역설에 대한 공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적절한 실험을 구상하여 검증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 과연 자연은 EPR의 주장대로, 즉 고전물리학적 방식으로 작동하느냐 아니면 보어가 제시한 매우 신비롭고 괴상한 방식으로 작동하느냐의 문제인데 이것을 실험으로 판가름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상이 갖는 물리량이 측정 이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는지 아니면 측정 순간에 결정되는 지를 어떻게 분명하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이론 물리학자들이 여가 시간에 맥주를 곁들이며 생각해볼 문제였다.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국제적인 대형 실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던 존 벨이라는 물리학자는 자신의 임무 이외에도 EPR 문제에 관해 남들보다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다지 가능성이 없는 문제를 붙잡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은 직장을 구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이란 충고를 들을 정도였다. 결국 벨은 1964년 깊은 열정으로 EPR 문제에 도전하여 진위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을 이론적으로 도출해냈다. 그것이 유명한 벨의 정리, 또는 벨의 부등식이라 부른다. 벨이 얻은 결과가 부등식의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과학혁명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EPR 역설을 해결함과 동시에 아인슈타인이 그렇게 소망했던 자연에 대한 신의 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었다. 일단 벨은 아인슈타인이 처음부터 내걸었던 실재성과 국소성을 전제로 이론을 전개했다. 실재성이란 측정 이전에 대상은 이미 해당되는 물리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며, 국소성은 한 곳에서의 측정 행위가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있는 대상의 측정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의 칼럼에서 비유적으로 제시한 것처럼 단 한 가지 성질, 즉 두 공의 색깔만이 아닌 세 가지 물리량에 대한 측정에 관해 고려하였다. 구체적으로 EPR 쌍을 이루는 두 입자가 갖는 세 가지 양을 측정하는 데 있어서 몇 가지 조합이 나올 확률들 간의 부등식을 유도한 것이다. 역시 비유적으로 말하면 두 공의 색깔, 크기, 재질을 측정한다고 할 때 공A가 빨간색이고 공B가 큰 것일 가능성 등 다양한 측정결과의 조합들을 비교해서 그 중 특정 조합들의 빈도들이 만족하는 부등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인슈타인의 생각대로 매우 상식적이고 특별히 주목할 내용이 없었다. 그런데 코펜하겐 해석을 토대로 그 결과를 예측해보면 결과는 반대로 나온다. 즉 양자역학이 말하는 자연은 분명 EPR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 실험을 해서 그 결과가 벨의 부등식을 만족하면 자연은 EPR의 생각대로 작동하는 것이었다. 반면 결과가 벨 부등식을 위배하게 된다면 코펜하겐 해석이 타당성을 갖게 된다. 벨 부등식은 오랜 공방에 종지부를 찍게 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이다. 문제는 당시의 기술로 정확한 실험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또 흘러 1982년, 즉 18년 만에 프랑스의 물리학자 아스페가 실험에 성공하였다. 빛을 두 갈래로 나누어 각자의 방향으로 긴 거리를 진행하도록 한 후 각자의 빛의 물리량을 측정하여 그 결과가 벨의 정리를 만족하는지 아니면 위배하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그 결과는 EPR의 생각대로 나오지 않았다. 코펜하겐 해석의 예측이 옳았던 것이다. 즉 자연은 실재성과 국소성에 있어서 모두, 혹은 어느 하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양자역학에서 이야기한 대로 고전물리학의 관점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1982년 이후로도 여러 그룹들이 이 실험은 더욱 정밀도를 높여가면서 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그런데 모두가 보어와 코펜하겐 해석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를 내놓은 것은 변함이 없었다. 물론 이것은 자연의 모든 비밀을 다 풀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신의 비밀에 그저 한 발자국 더 들어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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