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양자역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코펜하겐 해석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코펜하겐은 덴마크의 수도로 닐스 보어의 조국이다. 앞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급진파에 속했던 보어는 천재 청년 물리학자들인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등과 함께 양자역학의 완성에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코펜하겐 해석은 인류 지성이 역사에서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괴상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그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전자의 파동성을 입증했던 이중슬릿 실험을 살펴봐야 한다. 분명히 입자인 전자는 두 개의 슬릿이 뚫려있는 판을 통과한 후 멀리 떨어진 스크린에 간섭무늬를 만들었다. 당시 과학자들은 모든 불편한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이중슬릿을 향해 하나씩 전자를 발사해보았다. 발사된 전자는 슬릿을 통과한 후 스크린의 어느 한 지점에 도달한 것이 확인되었다. 마치 입자처럼 행동한 것이다. 그런데 발사된 전자가 늘어날수록 스크린에는 많은 점이 찍혔는데 그 결과는 놀랍게도 다시 간섭무늬였다. 전자가 입자라면 도저히 나타날 수 없는 간섭무늬였다. 결국 전자 하나하나가 간섭무늬를 만들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 전자는 둘 중 어느 하나의 슬릿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두 슬릿을 모두 통과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분명 입자인 전자가 어떻게 두 슬릿을 동시에 통과할 수 있을까? 믿기 어려운 가정이다. 따라서 전자의 위치를 확인하는 작은 장치를 두 슬릿 중 하나에 장착해서 통과한 전자를 확인하는 실험을 했다. 즉 각각의 전자들이 어느 슬릿을 통과했는지 확인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자는 분명 입자였다. 그런데 그 대가로 스크린에 나타났던 간섭무늬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입자는 간섭무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전자를 확인하는 장치를 끄는 순간 간섭무늬는 다시 나타났으며 전자는 파동처럼 행동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전자의 궤적을 확인하지 않으면 전자는 파동처럼 두 슬릿을 동시에 통과해 간섭무늬를 만들고, 우리가 궤적을 확인하면 전자는 입자처럼 행동하며 두 슬릿 중 어느 하나를 통과하기 때문에 간섭무늬는 사라진다. 코펜하겐 학파의 급진파들은 우리가 전자의 궤적을 확인하지 않았을 때 두 슬릿을 동시에 통과한 전자의 상태에 대해 슬릿1을 통과할 확률과 슬릿2를 통과할 확률이 서로 포개진 상태 (중첩상태)라고 해석했다. 이 두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함으로써 이들의 간섭에 의해 스크린에 간섭무늬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궤적을 확인하는 순간 두 가능성 가운데 하나는 사라짐으로써 간섭이 일어나지 않고 파동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는 마치 동전은 던지기 전에는 앞면과 뒷면의 두 가능성이 중첩된 상태로 존재하지만 던진 후에는 두 가능성 중 하나로 결정되는 것과 동일하다. 전자가 보이는 파동성은 바로 각 슬릿을 통과할 확률의 중첩인 것이다. 이 해석을 원자와 연결지울 수 있다. 수소원자에서 핵 주위를 움직이고 있는 하나의 전자는 우리가 그 존재를 측정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지점에 존재할 가능성이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 즉 우리는 전자가 어디에 있을 지에 대해 오직 확률적으로밖에 알 수 없다. 보어가 제시한 불연속적인 특정 궤도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든지 존재할 수 있지만 그 궤도에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자의 위치를 계속 측정을 통해 확인해보면 매번 여기저기에서 발견될 것이며 그 빈도를 기록해보면 마치 구름처럼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될 것이다. 우리는 오직 측정을 통해서 입자인 전자를 발견할 수 있을 뿐 측정하기 이전에는 가능한 모든 곳에 확률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쳐다보지 않으면 전자는 마치 파동처럼 중첩 상태로 많은 곳에 동시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쳐다보면 많은 가능성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 전자를 발견하게 된다. 측정하기 전에 전자의 위치는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측정행위를 통해서 그 위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해석을 혐오했기 때문에 “달을 쳐다보지 않으면 그 자리에 달이 없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 괴상한 해석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정확한 해석으로 인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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