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중심에 있다고 믿었던 시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맨 눈 관찰을 통해 확인된 지구를 돌고 있는 천체는 모두 일곱 개였다. 해(양)와 달(음), 그리고 다섯 개의 행성인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를 토대로 하는 음양 오행이론이 지금까지도 세상의 만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이론체계로 널리 퍼져 있다. 단지 천문학뿐만 아니라 인체의 원리에도 적용시켰고 나아가 계절의 변화, 색깔, 맛 등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현상과도 연결 짓고 있다. 서양은 일곱 개의 천체로부터 7이란 숫자를 매우 중시했고 행운의 숫자로 받아들였으며 요일명도 천체들의 이름을 쓰고 있다. 그런데 사실 지구는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며 지구를 비롯한 모든 행성은 태양을 돌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태양을 하나의 초점으로 하는 타원궤도를 그린다. 행성으로 공인된 천체는 수, 금, 지, 화, 목, 토 말고도 망원경을 통해 발견된 천왕성, 해왕성이 있다. 이 외에도 화성과 목성 사이에 매우 많은 소행성들이 띠를 이루어 돌고 있고 20세기 들어 발견된 명왕성은 행성의 지위에서 밀려났다. 실제로 명왕성 밖으로도 많은 천체들이 있으며 그 중에는 매우 찌그러진 타원을 따라 공전하는 핼리 혜성도 있다. 1781년 망원경에 의한 천왕성의 발견은 천문학 역사에서 최초로 다섯 개의 행성을 넘어서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이미 행성의 운동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뉴턴의 운동법칙과 만유인력법칙이 존재했기 때문에 당시 과학자들은 매우 정밀하게 천왕성의 궤도를 관찰했고 또 뉴턴의 이론적 계산 결과와 비교했다. 그런데 매우 불편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이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 상황은 관측된 천왕성의 궤도와 뉴턴 법칙에 의한 예측이 맞지 않았던 것이었다. 뉴턴 법칙은 19세기말 까지 물리학 체계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이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 상황에 대해 뉴턴 법칙 자체의 오류를 의심하기보다 다른 대안으로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그 가설은 천왕성 밖에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행성이 존재해서 천왕성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관측과 이론 사이에 불일치가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두 명의 과학자가 독자적으로 미지의 행성의 위치를 예측하는 계산을 수행했고 결국 1846년 프랑스의 르베리에가 그 결과를 출판하였다. 그리고 그해 9월 베를린 천문대의 갈레와 다레스트는 르베리에가 예측한 지점으로부터 1도 벗어난 위치에서 해왕성을 발견하였다. 이로써 해왕성은 한 이론 과학자의 계산에 의해 발견된 최초의 행성이 되었다.이 드라마틱한 사건을 계기로 뉴턴의 운동법칙과 만유인력법칙의 정확성이 입증되었으며 모든 과학자들이 뉴턴 패러다임을 더욱 확고히 신뢰하게 되었다. 특히 하늘의 세계와 땅에서 일어나는 낙하운동을 하나의 보편적 원리로 묶은 만유인력법칙은 결코 깨질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만일 당시의 과학자들이 천왕성 궤도의 불일치가 만유인력법칙의 오류라고 생각하고 다른 행성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가설이 아닌 법칙의 오류에 집착했다면 해왕성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언제나 하늘을 쳐다보는 천문대에 의해 언젠가 발견되었겠지만 이처럼 극적인 발견이 될 수는 없다. 과학사가인 토머스 쿤은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과학혁명이라 했고 안정된 패러다임의 시기를 ‘정상과학’ 시기라 했다. 정상과학이란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기존의 안정된 패러다임 하에서 사고하고 접근하게 되는 시기를 말한다. 해왕성의 발견도 정상과학의 결과로서 천왕성의 궤도에서 발생한 불일치를 만유인력법칙이라는 패러다임을 유지하고 그 틀 속에서 임시적인 가설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불일치가 자주 발생하고 반복되다보면 기존 패러다임이 무너지게 되는 혁명기를 맞게 되는데 이후 만유인력법칙도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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