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곡면 도천리(道川里)에 늙은 소나무가 있다. 나는 늙고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이상한 성격을 가졌다. 그러니 듣고는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스름이 내릴 무렴 도천리 소나무 찾아 나섰다. 하지를 막 지났으니 해가 떨어졌는데도 허공에는 어둠이 쉬 내려오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도천마을 안내도’가 훤한 모습으로 맞이했다. 마을로 들어서 얼마가지 않아 이정표에 나오는 ‘점빵’이 보였다. 마을 회관을 지나 진양 하씨 재실을 지났다. 마을도 그리 크지 않았고 안내도 또한 정확한 듯 하니 소나무를 금방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도랑가 도천길에는 저녁 바람을 맞으려 나온 마을 분들이 보였다. 자동차가 지나가니 뉘 집에 온 것인가 하는 호기심의 눈빛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길은 막다른 길이었다. 마을 끝까지 올라갔지만 오래된 소나무는 나타나지 않은 채 차도는 끝나 버렸다. 안내도는 마을을 잘 아는 사람의 눈에는 쉽게 그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초행길의 나에게는 뭔가 설명이 더 필요했던 것이었다.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났다. ‘저 산 넘어, 이 산 넘어 안 가본 사람은 꼭 가 본 사람에게 물어보고 가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는 사람에게 한번 쯤 물어보고 가는 것이 정확하고 빨리 가는 방법이었다. 차를 돌려 내려가는 길에도 마을 분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차에서 내려 늙은 소나무에 대해 물어보았다. 조그마한 삼거리에서 집과 논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소나무가 보일 것이라 했다. 차를 세워두고 마을 분들이 말한 길을 따라 걸었다. 가까이에서 개 짖는 소리가 달려 나왔다. 어딜 가나 사람보다 녀석들이 먼저 아는 체를 했다. 그래서 녀석들을 만날 때 마다 반가웠다. 돌담길을 따라 얼마가지 않아 푸른 소나무와 연못이 보였다. 도천리 소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213호)는 산자락 밑에 카멜레온처럼, 매직아이 속의 그림처럼 초록에 숨어 있었다. 나이가 35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0m, 둘레는 2.8m이다. 나뭇가지가 20m를 뻗치고 있어, 용이 우물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한다하여 용천송이라 불린다. 그리고 소나무 밑에는 작은 샘이 있는데 이끼가 끼지 않고 심한 가뭄에도 마르는 법이 없다고 한다. 소나무 뒤에는 작은 집터가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맹보 선생이 우물 뒤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그 부인이 새벽마다 이 우물에 정화수를 떠 놓고 남편과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남편은 충·효·예를 갖춘 공신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 하제도 군자감을 지냈다. 아들 하제는 어머니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 우물곁에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가 점점 자라면서 용이 승천하는 모습으로 변해 갔다고 전해진다. 용천송 밑에 서서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푸른 솔잎에 감추어져 있었다. 옅은 바람에 무수한 솔잎들이 사르락 사르락 소리를 만들었다. 시나브로 어둠이 내리고 있다. 검은 나무 가지는 어스름과 함께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설명할 수 없는 신령스러움이 내 심장을 울컥거리게 만들었다. 늙은 소나무는 사막을 홀로 걸어가는 수도승처럼 고독해 보였다. 소나무는 정절과 장수를 상징한다. 그 두 가지에는 고독이 따르게 마련이다. 곧은 절개와 오래 산다는 것은 ‘혼자’ 라는 단어를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지고 만져야 할 때가 흔하다. 파랗게, 파랗게 고독은 결정(結晶)화 되고, 그 결정이 고유해서 신령스러움까지 지니게 만든 것인지 모른다. 사람은 모두 심장 속에 고독을 키우며 살아간다. 나름대로의 소신과 각자의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고독할 수밖에 없다. 고독은 외로운 것이 아니다. 고독은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집중하게 하고 성장하게 만든다. 그러기에 고독이 차돌맹이처럼 단단해 질 때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닐까.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