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고열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처방도 해열제를 먹이는 것이 다였다. 그래도 약을 먹으면 잠들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퇴원을 하고 누워서 지내야만 했다. 어둠의 날들이 기약 없이 흘러갔다. 남편이 없는 틈에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집을 보러 오겠다니,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온 남편을 붙들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남편은 나를 안방에 눕혀두고 많은 일들을 했다. 회사에 사표를 썼고, 부동산에 집을 매물로 내놓았으며 승용차를 팔아 트럭도 샀다. 그리고 집 지을 땅을 알아보고 다녔다고 했다. 그 모든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 많은 일을 하는 동안 나에게 어떠한 의논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은 아픈 나를 바라보면서 삶이 참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는 그제 같은 퇴적에 불과한 일상이 무의미하게 여겨졌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는 법이다. 나는 남편의 급한 마음을 “다 때가 있다”는 말로 다독거렸다. 우리는 이년을 더 도시에서 보냈다. 그리고 함양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다. 도시를 떠나면서 우리는 많은 세간을 버렸다. 안방을 떡하니 차지했던 장롱을 버리고, 커다란 오디오와 소파를 버리고, 꼭꼭 숨겨놓고 살았던 옷들을 버렸다. 그리고 머릿속에, 가슴속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혹들을 버렸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정신의 눈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정신의 눈이 열려야 더 깊은 것을 볼 수 있다. 아파트에서 삶을 꾸려오는 동안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다는 착각을 했다. 부족함이 오히려 정신을 넉넉하게 만들 때도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세상의 욕심에 정신이 팔려 정신의 눈이 막혀 버렸는지 모른다. 어두운 고통이 밝은 현실을 덮어버리고서야 그 눈이 조금 떠졌던 것일까. 삶은 원하는 데로 흘러가지 않는다. 느닷없이 평화로운 시간이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고 돌연한 일들로 균열의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삶의 균열은 어둠을 몰고 온다. 고통스럽고 허한 슬픔에 마음은 어둠의 터널을 헤매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둠 속는 밝은 곳에서 보지 못한 아름다운 빛이 있다. 나 또한 어둠의 시간이 없었다면 달빛 내리는 산천의 풍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시골에 살면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다. ‘오늘 달 모양은 어떤 것일까, 오늘 달빛은 또 어떠할까’하며 밤하늘을 바라보고는 한다. 이 또한 맑은 산천을 곁에 두고 사는 즐거움중 하나 일 것이다. 지금도 오년 전 보았던 보름달보다 더 큰 달이 산천을 비추고 있다. 허나 그날처럼 밝은 빛은 아니다. 마을은 문명의 이기로 밝아져 버렸다. 밝은 가로등이 보름달처럼 곳곳에 세워졌고 많은 집들이 들어서 등을 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든 빛 때문에 달빛은 희미해져 버렸다. 그래도 나는 지금의 달빛에 만족한다. 달빛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만날 수 있고, 달빛에 흔들리는 벚나무를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잔잔히 다가오는 현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어둠 속에서 바람을 맞으며 달빛을 구경할 수 있는 여유에 감사하고 싶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밤의 적요를 가르며 달려온다. 보름달은 어느새 백암산에 정상에 걸려 있다. 희미하던 별빛도 차가운 빛으로 반짝거린다. 바람결에 잎들이 사운거린다. 산정의 달빛이 나직나직 내려앉는다. 교교하게 흩어지는 달빛이 어둠을 잠재운다. 밤이 잠든다. 그리고 나도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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