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보름달이 하늘에 걸려있다. 천지간이 환한 달빛으로 가득하다. 서늘함을 지닌 바람이 휘적휘적 길 위를 지난다. 사위가 커다란 옹기에 담긴 물처럼 적요하다. 보름달을 볼 때 마다 가슴이 설렌다. 아마도 맑은 공기 속에서 보름달을 바라보는 여유로움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사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보름달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함양으로 이사를 온 날이 칠월 백중이었다. 저녁을 먹고 바라본 하늘에 커다란 보름달이 눈에 들어왔다. 둥근 달이 소나무 꼭대기에 걸려 산천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날의 월광을, 노랗게 물든 산천의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둠이 짙을수록 달빛은 강하기 마련이다. 낯선 들녘의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달빛은 무척 밝았다. 달빛이 그렇게 밝을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책을 펼쳐놓고 글을 읽으면 깨알 같은 글씨도 읽을 수 있었을 같았다. 어찌나 밝고 밝은지 팔뚝에는 소름이 살짝 돋기도 했다. 그리고 가슴이 뭉클거렸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나는 것은 왜일까. 눈을 부릅뜨고 살았지만 정작 저렇게 훤한 달빛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았던 모양이다. 노란 달빛 속에서 초록의 점들이 하나씩, 둘씩 흩날렸다. 부서진 별 조각의 잔해처럼 자유로이 허공에서 날아다녔다. 맑은 빛은 반딧불이었다. 삶에서 발생했다 사라지는 올망졸망한 섬광처럼 나의 삶도 저렇게 아름다웠으면 싶었다. 남편이 이상한 감정을 떨치려는 듯 말문을 열었다. “참, 그 달 한번 밝기도 하네.” 달빛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변할 뿐이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에게 제각각의 이야기가 있듯이 제각각의 달이 있을 것이다. 나는 슬픈 달 하나를 알고 있다. 소유에 집착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질병이라 했다. 나는 이것저것에 집착했다. 많이 배우는 것에 집착했고 많이 가지는 것에 집착했다. 마음에서 해방되지 못한 소유욕은 몸 깊은 곳에서 불덩이를 만들었다. 사십 도를 오르내리는 고열과 두통으로 잠들지 못하는 여러 날이 지나갔다. 남편이 나를 위해 만든 음식은 위에서 잠시도 머무르지 못했다. 곧장 식도를 통해 되돌아 넘어왔다. 겨우 과일 몇 조각만이 몸을 지탱하게 해 주었다. 부족한 영양분으로 얼굴은 달처럼 하얗게 시들어 갔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입원을 했다. 팔뚝에 바늘을 꽂고 수액을 흐르게 했다 약의 기운 때문이었을까. 톡, 톡, 톡 떨어지는 약병의 물방울을 바라보며 모처럼 깊은 잠을 잤다. 의사는 이곳저곳 검사실로 나를 보냈다. 내 몸속에 펴져 있는 고열의 원인을 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원인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 다리의 힘을 잃어버리며 점점 더 중환자가 되어갔다. 아픔의 시간은 느리고 어두웠다. 병실의 공기는 답답하고 텁텁했다. 시원한 바람을 쐬면 몸속의 열기가 몽땅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어느 캄캄한 밤,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도둑고양이마냥 살금살금 밤 외출을 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공설운동장이었다. 둥그런 담이 둘러쳐 있고 어둠속에 선명한 달이 두둥실 떠 있었다. 달은 창백하게 밝았으며 슬픈 나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내 손을 꽉 잡은 남편의 손길이 울음으로 흥건한 것처럼 느껴졌다. 젖은 두 손길을 위로하듯 겨울 계절풍이 ‘우우우’ 넋 같은 소리를 내며 어둠속에 서있는 우리를 쓰다듬으며 지나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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