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회시간이 되면 시매부를 보기위해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머리에 하얀 붕대를 감고 온몸에 하얀 천을 덮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표백의 상태였다.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으니 기계에 의지한 채 숨을 쉬었다. 몸에는 유리병이 고드름처럼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멀리 가 있을지도 모를 영혼에게 말을 건넸다. 짧은 순간 말을 알아듣는 듯 깊은 숨을 쉬는 듯 했다. 꾹 닫힌 눈꺼풀에서 끈끈한 진액 같은 습기가 맺혔다. 하루 종일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있다 어둠이 내리면 우리는 시누 집으로 갔다. 시누는 어둠이 무섭다고 했다. 무서움을 떨치기 휘해 방방마다 불을 켰다. 잠을 자려 눈을 감으면 시매부의 목소리가 귓속에서 부스럭거린다며 어깨를 떨었다. 시매부는 평소에도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밥알이 모래알 씹는 것 같다며 제대로 먹지도 않았다. “열무김치에 된장 넣어서 비벼먹고 싶어.” 시누는 매번 그 부탁을 외면했었다. 두통을 상습적인 꾀병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 소리가 이명이 되어 심장에 깊숙이 박혀 있는 것 같다 했다. 숨을 쉴 때마다 욱신거린다며 울상이 되었다. 열무김치와 된장이 뭐가 그리 귀찮았기에 해 주지 못했을까 하는 죄책감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했다. 잠들지 못하는 시누에게 어깨를 빌려주면 그제야 잠이 들었다. 드디어 시매부의 영혼은 병실의 불빛을 찾아 이승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혀가 굳어 있어 음식을 목으로 넘기지 못했다. 대소변도 혼자 해결할 수 없었다. 말하는 법도 잊어 버렸고, 사람도 알아보지 못했다. 금방 태어난 아기처럼 되어버렸다. 시누는 오래전 아기를 기르듯 자신의 남편을 돌보았다. 작은 몸으로 남편을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혔다. 말을 가르치고 운동을 시켰다. 그러면서 계절은 바뀌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두 번의 수술을 더 거치고 결국 시매부는 마른 장작에 인간의 허물을 뒤집어 쓴 사람같이 되어 버렸다. 마치 버섯나무처럼······. 버섯나무는 오로지 몸통 하나로 생명을 길어낸다. 뿌리와 가지를 잃고 버섯을 키운다. 본래의 모습이 사라지고도 제 본분을 충실히 해 나갈 수 있는 것은 굵은 가지 속에 쌓인 수액 때문이다. 시매부는 평생을 옆으로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오직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왔다. 살아온 세월 속에는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수액이 축척되어 있었다. 여러 차례의 수술비와 병원비, 간병비로 많은 돈이 새어나갔다. 그래도 시누는 어렵다는 소리 없이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다. ‘든든한 가장’이라는 이름표를 잃어버린 사람. 오로지 몸통 하나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사람. 비록 당신을 잃어버리고 버섯나무처럼 되어버렸지만 사랑이라는 수액은 여전히 풍부했다. 가족들은 그 사랑으로 서로를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살아 있어줘서 고맙지.” 시누는 그렇게 말하고 깊은 숨을 내 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웃음 속에 어쩌지 못하는 아픔이 묻어있었다. 그 아픔이 자욱한 안개처럼 내 심장 속에 아리하게 자리 잡았다. 가끔은 살아가는 일이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슬퍼도, 아파도 깊은 숨 한번 쉬고 또 쉬며 삶을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살아간다는 것은 가슴속에 숨표 하는 크게 찍는 것이리라. 어차피 운명의 바람으로 아파해야 한다면 작은 희망이라도 붙들고 싶다. 그러면 조금은 덜 힘들지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가시밭길 끝나는 곳에 또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분명 언젠가는, 기약할 수는 없지만 아픔이 물처럼 풀려서 고요히 흘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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