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 정순봉 마을 지킴이가 숭양정 옛터를 답사하고 있다.> 우리마을 지명유래… 그 뿌리를 찾아서 6    "지곡면 주암마을에 가면 시크릿 가든이 있다"                                                            <비밀의 정원>  주암마을은 양지담과 음지담 그리고 대밭말 용소말 등이 모여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도숭산에서 발원한 물이 주암마을 아래로 흘러간다. 그곳에 용소가 있다. 이 마을 진산은 도숭산이다. "옛 어른들. 말입니다. 도숭산은 깊숙하되 깨끗하고 으슥하되 시원하게 통해서 멀어도 궁벽하지 않고 드러나 속되지 않으니 가히 흡족하게 사군자(士君子)의 장수(藏修)할 곳이니라"  천광하림 백천동귀 진룡소퇴天光下臨百川同歸眞龍所退함양군 지곡면 백암리 주암마을….마을 이름 속에 담긴 의미가 엄청나다. 일엽편주(一葉片舟)할 때 배 주(舟)에 바위 암(岩)자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마을 땅속은 온통 암반석으로 되어 있단 말인가? 주암마을 지킴이 정순봉(73) 전 이장은 힘주어 말한다.“그렇소이다. 전부 암반석으로 되어 있소이다. 내로라 하는 풍수가들이 우리 마을을 답사하고 한다는 말씀. 참. 서기 어린 곳이라고 칭송하데요. 도를 숭상한다는 의미의 도숭산(표고는 1044.2m). 중앙에 까마귀 오(烏) 오봉산이 있지요. 흔히 까마귀를 가리켜 신의 전령사요 삼족오의 상징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 책 읽는 마을 '장서동'주암마을은 양지담과 음지담 그리고 대밭말 용소말 등이 모여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도숭산에서 발원한 물이 주암마을 아래로 흘러가는 냇물 속에 용소가 있다. 이 마을 진산은 도숭산이다. "옛 어른들 말입니다. 도숭산은 깊숙하되 깨끗하고 으슥하되 시원하게 통해서 멀어도 궁벽하지 않고 드러나 속되지 않으니 가히 흡족하게 사군자(士君子)의 장수(藏修)할 곳이니라.마을 심장부에 용소가 둘씩이나 있소이다. 천광하림 백천동귀 진룡소퇴(天光下臨百川同歸眞龍所退)라 용소 속 용들이 머리를 내밀며 물 속에 기를 쏟아 내고 있으며. 하늘에서 서기의 빛이 이 용소 속으로 쏟아져 내린다지요?”  ▲ <숭양정> 현판을 보관하고 있는 후예 정형기 선생-마을이름에 배 주(舟)자가 있으면 통상. 풍수형국에서. 행주형(行舟形)이라고 하지요“맞심. 행주형국이지요. 20년 전만해도 배에서 깃발을 다는 것 모양. 그 뭐시기냐. 나무로 깃대를 만들어 동리 어귀에 세워서 깃발을 달아놓았지요”-풍수연구가 장영훈 선생 말에 따르면 행주형은 승객과 화물이 가득 채워지는데 여기서 말하는 승객은 인물발복이요 화물은 물질적인 풍요를 의미한답니다. 주암마을 역사를 회고하건데 어떤 인물발복이 있었나요?"정태현 선비가 계셨습니다. 어른께서는 이 마을에 숭양정(崇陽亭)을 세워 후학을 양성했답니다"정태현.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여칠(汝七). 호는 죽헌(竹軒). 1883년(고종 20) 천거로 동몽교관(童夢敎官)이 되고. 1886년 한성부주부(漢城府主簿)가 되었다. 1894년 동학난이 일어나자 두동(杜洞)으로 들어가 살면서 어려운 친척들에게 토지를 떼어주고 동리의 어려운 자들을 모두 도와주니 목비(木碑)와 석비(石碑)가 많이 세워졌다.1901년 충북관찰사(忠北觀察使)에 임명되었는데. 민영환(閔泳煥)은 국가가 좋은 사람을 등용했다고 그의 등용을 기뻐했다. 취임 후 선정(善政)을 베풀어 송덕비(頌德碑)가 세워졌으며. '여씨향약(呂氏鄕約)'을 모방하고 이이(李珥)의 규례(規例)를 참작하여 도향약(道鄕約)을 만들었는데 얼마 안되어 면소(面所)에까지 시행되었다. 백성들은 생사당(生祠堂)을 세우려 하였고. 임금은 그의 공평정대하고 용왕매진(勇往邁進)하는 것을 크게 칭찬했다.1905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뒤에 벼슬에서 물러나 도숭산(道崇山) 남쪽에 숭산정사(崇山精舍)를 세우고 책을 구입하여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그가 죽은 후 유림들에 의해 향교장(鄕校葬)을 거행했으며 숭양정(崇陽亭)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죽헌집' 3책이 있다.숭양정은 일명 숭원정이라고도 한다. 정순봉 전이장과 함께 주암마을 답사 1번지 숭양정을 찾았다. “보시다시피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 이 의미 깊은 곳을 이렇게 방치해놓고 있으니. 우찌 함양을 유림본산(儒林本山)이라고 할 수 있겄소? 숭양정을 세운 정태현 어른의 깊은 뜻을 나. 한번 암송해보리라”  <어려서 배움 없고 늙어서 이름 없이/ 황진을 폭기하니 뉘우침은 가볍지 않네/ 보상함엔 능히 한 글자도 취답함만 못하고/관유들은 오히려 스스로 중정을 부끄러워 여기네/ 산을 사고 집 지어서 책을 장지해 두고/ 수계하여 어진이 구하니 강도함이 밝도다/ 연하와 천석의 좋은 경치 사랑하노니. 면장하는 땅에서 제생들을 기다리네>  정태현 어른의 학문사랑. 후학사랑이 구절구절 마다 담겨져 있다.  -정태현 어른의 유작과 유품이 만만찮겠는데요?“후손 정형기 아형이 보관하고 있을 겁니다. 유작들과 유품을 토대로 숭양정을 복원시켜야 할 터인데…”  주암마을 숭양정은 길이 보전되어야 할 문화유산잠시 후 서상진 이장(011-865-7683)이 답사팀에 합류했다. -마을이 참 아름답습니다. 전해오는 전설을 소개해 주시죠.“전설이 아니라 실화 하나 소개하면. 우리 마을에 정순채라는 분이 살았습니다. 전교(典敎) 정기현의 차자(次子)로서 11세때 모친 중환에 지극 정성으로 간호. 모친을 소생케 했으며 부친 노한에 지극 정성 시탕하여 나중 나라로부터 표창을 받았습니다”  -마을과 관련. 흥미로운 야화는?"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터를 잡고 사는 성씨는 이천 서씨였고요 선조임금 때. 그 뒤를 이어 진양 강씨가 들어와 살았습니다. 마을엔 용과 관련된 전설이 많습니다. 주암마을 동쪽에 덕곡계가 있는데 그곳에 애기소가 있어요. 옛날. 이 마을에 나무꾼 총각이 살았는데 하늘서 온 선녀와 인연을 맺고 살면서 아들을 낳았으나 그 아들이 폭우에 그만 죽고 말았다 합니다. 그 화신. 용으로 변해 저 애기소에서 승천했다고 합니다”  ▲ 바위로 된 배… 舟岩마을-베틀굴 야사도 흥미롭더군요.“음지주암 서쪽에 있는 문바우 뒤편에 잇는 굴인데 임진왜란 때 굴 안에서 피난을 하며 베를 짰다고 하네요”-주암마을 숭양정 현판을 흥선대원군이 썼다죠?“현판이 아니고 숭양정 안에 있는 사월당 글씨를 쓰셨죠. 여기서 말하는 사자가 오묘합니다. 인터넷한문사전에는 이 단어(사)가 안 나올걸? 비스듬히 바라볼 사자에 달 월. 달을 요렇게 누어 비스듬히 곁눈질로 바라본다 얼마나 품격 있는 말입니까? 하하하”-군 당국에 당부할 말씀은.“주암마을 숭양정은 길이 보전되어야할 문화유산입니다. 나중 기회가 되면 숭양정기(崇陽亭記) 한번 읽어보세요. 글 하나 하나 명구로 되어 있습니다. 정태현 장손 은상씨는 <숭양정기>를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 무릇. 우리 정자(亭子)를 같이 하는 자. 이로써 자손이 학업을 독실(篤實)하게 닦고 그 실마리를 진흥한다면 거의 양맥을 이미 버린 곳에서 붙들리니 나의 왕부(王父)께서 창학의 뜻을 어찌 불귀함이 있으리오! 이런 어른들이 우리 마을에 사셨다는 것 정말 보람차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숭양정을 하루빨리 복원. 함양이 유림의 본산지임을 만방에 알려야 할 것입니다”  구본갑|본지칼럼니스트busan7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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