筆峰有感강덕오 논설위원 아침 안개가 걷힐 무렵 필봉에 오르면 한 눈에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한 고산준령이 사방으로 병풍처럼 처져있고 상림과 한들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필봉은 하루를 시작하는 일출을 볼 수 있고 지친 하루의 일상을 마감하는 일몰을 볼 수 있는 우리와 삶을 같이 해 온 살붙이 같은 산이다.계절따라 작은 풀꽃들이 피어나고 대숲과 솔숲. 잡목 숲이 잘 어우러진 산이다. 요즈음은 찔레와 아카시아 꽃이 향내를 다투고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하얀 꽃잎들이 하르르 떨어져 잔잔한 감동을 더해준다. 환경이 좋아서인지 청아한 꾀꼬리 소리와 따다닥 딱따구리 나무 쪼아대는 소리. 나른한 오후 한가로움을 더하는 장끼 울음소리. 가끔씩 쪼르르 달려왔다가는 다람쥐 재롱까지. 시가지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자연이 살아숨쉬는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행복감을 더해주는 고맙고 고마운 산이다.해발 233m 높지 않아서 누구도 오름을 거부하지 않는 산. 작지만 우리를 언제나 넉넉히 품어주는 산이다.필봉이 언제부터 왜 그렇게 불리어 왔는지 알 수 없지만 먼 옛날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면학에 힘쓰고 학문을 숭상하여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이름 지었거나 필봉의 형상이 붓끝처럼 뾰족하게 보여 이름지었을 것으로 짐작된다.유난히 산이 많은 우리 고장에 높고 뾰족한 산도 많은데 왜 이 작디작은 산을 필봉이라 이름지었을까 아마도 학문의 완성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에 있고 학문이 먼 곳에 있지 않고 우리의 일상과 가까이 있음을 일깨워주려는 메시지가 아닐지 또 항상 가까이 보면서 면학의 의지를 다지라는 의미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필봉의 정상이 상징적 형태가 훼손되어 평평하게 깎이어 지금은 몇 가지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볼품없는 모습이 되어 있다. 운동기구설치 목적이 시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 만들어졌으니 취지나 노력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바로 아래 8부 능선에도 운동기구를 설치해 사용하고 있으니 모아서 운동기구를 배치했으면 사용자도 편하고 산봉우리도 보존되어 필봉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공사를 시행한 사람들은 별다른 생각없이 정상을 훼손하였겠지만 우리에게 희망을 길러 줄 수 있는 정신적 유산이 함께 훼손된 것이다. 근래에는 정상부근에 크게 자란 상수리나무 등으로 시야를 가려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필봉이 상림에 인접해 있고 최치원 둘레길에도 포함되어 있다. 요즈음 서울의 남산 타워가 외국 관광객들의 명소로 각광받는다고 하니 필봉산 정상에 붓끝을 상징하는 전망탑을 만들어 우리 고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높고 낮은 산들과 시가지. 상림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하여 관광효과도 높이고 필봉의 본래 상징성도 살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학문에 대한 희망의 촛불을 밝히면 미래도 밝아지고 군민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자랑스러운 상징물이 될 것이다.전망탑의 건립이 어렵다면 봉우리를 복원하여 그 중심에 끝이 뾰족하게 자라는 천년을 약속하는 늘푸른 주목 한 그루를 심어 필봉을 살려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아름답고 훌륭한 전통적 유산은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갈 때 우리 삶의 뿌리도 튼튼해지고 행복의 잎사귀도 무성히 피어날 것이다.필봉을 그냥두면 장삼이사(張三李四)처럼 흔하디흔한 산이겠지만 그 상징적 의미를 살려내면 우리의 정신적 자산으로 큰 역할을 하는 산이 될 것이다. 우리와 영원히 같이 할 필봉의 상징성을 살리는 희망탑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모란이 지는 5월의 끝자락에 필봉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