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순 논설위원흔히 일컫는 잔인한 달 4월은 지났다. 올핸 유난히 일교차의 변동도 커 봄이 왔다고는 했지만 피부로 와 닿는 봄은 계절을 거꾸로 돌려놓는지 금방 추워졌다 더워졌다를 변덕스럽게 반복했다. 언 땅을 녹이는 심술궂은 봄바람이 자신을 확실히 알리는 묘한 방법을 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철 뜸했던 상림관광안내소 주변은 봄이 되자 활기가 넘친다. 하루에 한 대도 보이지 않던 관광버스가 주말이면 이른 아침부터 상림을 찾은 외부 관광객으로 주차장은 일찌감치 꽉 차 버리고. 소형차 주차장도 가족단위 방문객으로 빈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다. 계절은 표현의 방법을 빌리지 않더라도 확실하게 변화함을 보여준다. 5월이 온다. 계절의 여왕이란 수식을 달지 않아도 5월은 아름답다. 많은 시인과 음악가가 5월을 노래했다. 독일 낭만주의 음악가 슈만은 연가곡 <시인의 사랑> 을 작곡했는데 하이네의 시에다 곡을 붙였다. 그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5월에’ 란 노래는 너무나 서정적이고 가사도 아름다워 많은 성악가들이 애창하는 곡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5월에/ 꽃봉오리들이 모두 피어났을 때/ 나의 마음속에도/ 사랑의 꽃이 피어났네/ 아름다운 5월에. 라고 노래한다. 나무의 새순이 한창인 상림 숲 안은 봄의 전시장이다. 나무마다 힘차게 새로운 기운을 뿜어 올리는 기세는 인간의 경쟁사회만큼 치열하다. 모든 생명체는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상림 숲을 걷다 보면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상림의 나무들은 야산에서 자라는 나무가 아니기에 고단한 투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를 먹은 나무들은 새 봄이 올 때마다 자신의 생명을 잇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작년에 보이지 않던 나뭇가지가 새로이 삐져 나와 여린 잎을 달고 또 다른 생명을 이어가는 걸 알 수 있다. 5월의 상림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다. 겨우 눈을 뜬 것처럼 보이던 여린 잎이 저녁 무렵이면 제법 야무진 잎의 형태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꼿꼿하게 치켜든 걸 확인할 수 있다. 상림 숲 안의 물푸레나무 새순이 오르는 걸 보면 안도현 시인이 노래했던 시가 생각난다. 저 어린것이/ 이 험한 곳에 겁도 없이/ 뾰족. 뾰족 연초록 새순을 내밀고 나오는 것/ 애쓴다. 참 애쓴다는 생각이 든다/ 저 쬐그만 것이 이빨도 나지 않은 것이/ 눈에 파랗게 불 한번 켜 보려고/ 세상 속으로/ 여기가 어디라고/ 조금씩. 조금씩 손가락을 내밀어 보는 것/ 저 물푸레나무 어린 새순도/ 이 봄에 연애 한번 하러 나오는가 싶다/ 물푸레나무 바라보는 동안/ 온몸이 아흐 가려워지는/ 나도. 살맛나는 물푸레나무가 되고 싶다/ 저 습진 땅에서/ 이내 몸 구석구석까지 봄이 오는구나.5월은 생명의 예찬과 함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조바심을 일으킨다. 일 년 중 반을 향해 치닫는 시간은 결코 편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조바심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을 바로잡는 위기(危己)다. 자신을 바로 잡지 않고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림의 숲 안의 나무들이 자신을 바로 잡는 모습은 뿌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느티나무와 중국단풍을 보면 간혹 뿌리가 밖으로 솟아 있거나 땅위로 나와 있다. 이 나무들은 비바람에 뿌리가 뽑힐 것 염려해서 또 다른 뿌리로 감싼다. 나무든 사람이든 뿌리가 뽑히면 살기가 어렵다. 필자는 상림을 찾은 관광객에게 꼭 이 장면을 보여주고 설명한다. 상림의 화려한 꽃도 나무가 살아가는 방식이지만. 화려한 꽃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상림 숲 안의 나무뿌리에 눈길을 두는 것은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 나무는 궁핍할 경우에도 뿌리를 튼튼히 하면서 좋은 때를 기다린다. 나무는 가뭄이 들면 자식을 낳기 위해 꽃을 많이 만들기보다 뿌리를 튼튼하게 만든다. 이것이 자기를 바르게 하는 자세이고 나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물푸레나무가 세상을 향해 온 몸을 비틀며 생명을 뻗치듯. 상림의 나무들이 뿌리를 견고히 다지듯 우리의 인생을 열정으로 재정비해야 될 것 같다. 상림의 5월은 풍요롭다. 그러나 고단한 일상. 안팎으로 챙길 것 많은 위치. 점점 한계를 보이는 체력. 바쁜 생활에 쫓겨 좁아지는 인간관계 등 세상살이는 결코 녹녹치가 않다. 오월 어느 날.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고 노래한 김영랑 시인도 있지만 5월의 상림은 축복이다. 나무와 풀들이 노래하고 나무뿌리에서 지혜를 배우고 인생의 순서를 가다듬고 열정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저말고 서둘러 5월의 상림을 걸어보자.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