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TalkTalk 95회자애로운 아버지 연암 박지원과 생강나무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 생강나무농촌이나 산촌에 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늘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변화라는 축복을 가져다주는 자연이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 모습을 달리 해 가는 산야를 보다가 어제처럼 훌쩍 벚꽃 흐드러지게 핀 남녘 어디쯤을 다녀오고 나니 아주 낯선 곳을 방황하다 온 것 같은 피곤함이 느껴진다. 자연이란 모름지기 내 의식이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자연스러운 변화를 해야 한다고 몸이 느끼는 것 같다. 봄이 오고 있다고 느끼면서 나는 내가 사는 곳의 뒷산을 흘깃거리면서 생강나무의 꽃망울이 벌어지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꽃송이를 따다 보면 코끝을 자극하는 알싸한 생강의 냄새가 차 한 잔을 우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므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질 것이기 때문이다.진달래도 피기 전 이른 봄의 야산이나 계곡을 노랗게 장식하는 생강나무. 산수유인가 잠시 착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꽃이 가지에 바짝 붙어있어 잎자루가 길게 뻗은 산수유와는 구분이 되는 생강나무는 생강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는 잎과 어린 가지를 잘라서 말려 두었다가 향신료로 썼다고 전해진다. ▲ 생강나무꽃차생강나무는 그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다. 발을 헛디디거나 넘어져 타박상으로 인해 어혈이 생긴 것을 풀어주며 혈액순환을 도우므로 산후 부종과 산후통을 치료하는데 사용되어 왔다. 특히 유산을 하거나 산후에 온몸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는 듯 오한이 나고 뼈마디가 쑤시는 증상이나 식은 땀. 손발 시림 등의 증상에 생강나무의 어린 잔가지를 꺾어다 다려 먹으면 효과가 좋다고 한다.그래서 그런지 함양의 안의현 현감을 지낸 연암 박지원의 문집을 통해 전해오는 기록을 보면 아이를 출산한 큰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생강나무에 관한 이런 구절이 있다.“산부(産婦)의 산후(産後) 여러 증세가 아직도 몹시 심하다고 하거늘 퍽 걱정이 된다. 산후 복통에는 모름지기 ‘생강나무’를 달려 먹여야 하니. 두 번 복용하면 즉시 낫는다. 이는 네가 태어날 때 쓴 방법으로 노의(老醫) 채응우의 처방인데 신효가 있으므로 말해준다” 남쪽의 해안가 지방에서는 이른봄에 붉게 꽃 피는 나무를 동백나무라고 부르지만 강원도에서는 지금도 생강나무를 나무동백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강원도 춘천의 요절한 소설가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도 물론 생강나무의 노란 꽃을 의미한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가을에 맺히는 까만 열매를 모아 기름을 짜서 여자들의 머릿기름으로 썼다고 하신다. 향기롭고 끈적거리지 않으며 머릿결에 윤기를 주므로 많이 사용했다고 하신다. ▲ 생강나무잎또한 강원도에서는 차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추운 곳이므로 참새혓바닥만큼 나온 생강나무의 어린순을 따서 말려 ‘작설차’라고 부르며 마시기도 한다. 차로 마시기에는 생강나무의 꽃도 아주 향기롭고 좋으니 어혈을 풀어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므로 생리를 시작하기 전이나 끝날 무렵에 차로 마시면 도움이 된다. 꽃이 지고 잎이 나기 시작하면 잎을 따서 찹쌀풀을 이용한 부각을 만들어 두면 반찬으로나 간식으로나 술안주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심장의 모양을 닮은 생강나무 잎의 한 면에 찹쌀풀을 발라 말린 후 다시 나머지 한 면에 찹쌀풀을 발라 다시 말리면 살짝 두꺼운 잎이지만 쉽게 말릴 수 있어 어렵지 않으니 올 봄에는 잎이 필 무렵을 기억해 두었다가 만들어 저장해 두면 좋을 것이다. 자애로운 아버지 연암 박지원 선생도 인정했던 생강나무.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차로. 부각으로 즐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