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우리 우리나라 대한민국”“나 너 우리 우리나라 대한민국”필자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제일 먼저 배운 글자가 바로 “나 너 우리” 라는 글이다. 지금처럼 미취학전에 한글을 깨치고 입학했던 때와는 상반되는 시절이었다. 이렇게 따스한 봄날이면 옛날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삽화가 생각이 난다. 시냇가에 버들강아지들이 노래를 하고. 산에는 진달래꽃이 방긋 웃고 있으며 들판엔 이름 모를 꽃밭에 한 소녀가 나비와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게 만든다. 분위기는 아득하고 정겹다. 또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삽화였으며 자연환경에 동심을 자극하면서 감성을 불어 넣을 만큼 마음이 포근해진다. 많은 시간이 흘렀으므로 추억의 교과서는 이제 교과서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나 너 우리 우리나라” 라는 이 글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 그때는 잘 모르고 글자만 익히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에는 참으로 좋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가 있으면 반드시 네가 있고 나와 너는 우리라는 것... 그리고 여기에서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을 생각할 수 도 있고 앞으로 난 누구를 만나 우리라는 공동체를 형성하게 될 것인지? 생각하게 되며 또 우리나라를 얼마나 사랑하고 어떤 나라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함께 우리라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한가정이 이루어지고 가정이 모여 마을이 형성되면서 한 국가가 이루어진다. 단순히 복수의 의미보다 함께 일컬어지는 의미로 같은 소속. 동아리로 생각하는 의미이다. 평소에 “우리”라는 말을 우리는 참으로 많이 쓰면서도 좋은 줄 모르고 있다. 우리가족. 우리마을. 우리학교. 우리친구. 등등 제일 많이 쓰는 단어가 “우리”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은 사회에 절대로 혼자 살 수도 없고 혼자서 이사회를 이룩할 수 도 없다. 그래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여러 가지 관계를 맺으며 살고 사람들 속에서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나 한평생 살다가 생을 마감 할 때까지 같이 할 수밖에 없는 말이 바로 우리라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라는 말처럼 공동체의식으로 인식하기에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사회가 급성장하면서 가족형태도 변화를 가져오고 우리라는 중심보다는 개인 중심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남을 밟고 일어서야만 내가 최고의 자리에 앉을 수 있다. 그 자리가 선의의 경쟁이라면 “우리”라는 개념을 잃지 않기를 우리는 간절히 원하면서도 매번 속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요즘에 자기주장이 강하면 하는 말로 저 사람은 이기주의야 또는 개인주의야 하는 식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가족관계나 더불어 사는 사회 속에서 개인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주의니 이기주의니 자기중심주의니 하는 말이 많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개인주의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핵가족형태 대부분의 자녀가 한 둘 정도 되다보니 개인주의 성향이 높다. 앞으로는 개성시대라고 남과 차별화 된 것이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주의는 개성과는 다르다. 개인주의는 자아를 독립적으로 지각하면서 개인의 독자적인 견해와 목표를 중시하며 자기행동의 기준에 있어 자신의 개인적 만족과 판단을 중요시하는 개념이다. 이것이 지나친 성향으로 발전하여 은둔생활로 이어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현 사회에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면 필자 역시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의 생각만 옳고 내 목소리만 외치고 내 이익만 추구하는 그런 사람보다는 “나”가 아닌 “너” 더 나아가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으로 발전되고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이 밝고 명랑한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의 길이 되리라 생각한다. 선택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공동체의식으로 한 국민으로써 권리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의무와 책임이 따라야 한다. 소중한 한 표가 우리지역에 또는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여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우리 함양군민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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