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TalkTalk 90회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 연암 박지원 "고추장을 작은 단지로 하나 보낸다.사랑에 놓아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겠다.이것은 내가 손수 담근 것인데. 아직 잘 익지는 않았다" "지난번에 보낸 소고기 볶음은 잘 받아서 아침저녁 찬거리로 했느냐? 어째서 한 번도 좋다는 뜻을 보여주지 않느냐?답답하고 답답하구나.나는 육포나 장조림 등의 반찬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추장도 내가 손수 만든 것이니맛이 어떤지 자세히 알려다오" 위의 글은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우리고장 함양의 안의 고을 수령으로 재직할 때 서울에서 지내는 아들 박종채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생존하고 있는 자손의 이야기를 빌어 유추하자면 박지원의 아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매콤한 고추장을 사랑에 두고 잠이 오거나 딴 생각이 날 때마다 조금씩 먹으면서 정신을 차리라는 뜻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진의가 어떻든 간에 된장과 함께 고추장은 요즘과는 달리 한 집안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 담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장(醬)을 일러 장(將)이라 말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고추장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매운맛. 짠맛. 단맛. 구수한 맛의 네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고추장의 매운맛을 책임지는 것은 고추이며 단맛은 엿기름에 당화된 곡물이고. 구수한 맛은 찹쌀이나 멥쌀 혹은 그 외의 곡물이 책임을 지며 짠맛을 내는 것은 소금과 간장의 몫이다. 이 네 가지 맛이 잘 버무려지고 어우러져 시간을 보내면서 기다리면 매콤하고 달콤하면서도 구수하고 짭조름하여 연암 박지원이 아들에게 말한 ‘육포나 장조림 등의 반찬보다 나은’ 고추장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찹쌀과 고춧가루. 메주가루. 소금. 엿기름. 조청만으로 고추장을 담았지만 현대인들은 고추장에 다양한 농산물을 가공하여 넣은 기능성고추장을 만들기도 한다. 감귤이 많이 나는 제주에서는 감귤고추장을. 매실이 많이 나는 지역에서는 매실고추장. 마늘의 고장에서는 마늘고추장. 토마토고추장. 사과고추장. 양파고추장 등등 다양한 재료들로 만들어 다양한 이름이 붙여진 고추장들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설탕 등의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고 과일이나 채소가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단맛을 이용해 담그는 고추장이니 두루두루 몸에 좋은 것이라 계속 권장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트에서 팔리고 있는 생산자를 알 수 없는 농산물과 성분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첨가물로 범벅이 된 고추장을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사서 먹기에는 우리의 건강이 위협받는 정도가 너무 커서 걱정이 되므로 하루 이틀 번잡을 떨며 담그는 고추장으로 우리 가족의 일년 건강을 책임지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올해는 윤달이 끼어 봄이 늑장을 부리고 있으므로 지금부터 준비하여 담그는 고추장이 늦지 않았으니 시도해 보면 어떨까 한다.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