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차 名山 산행 / 함양 삼봉산눈 덮인 하얀 세상 별천지에 노닐다 삼봉산 산행을 위해 이른 아침. 잠에서 깨었을 때 삼봉산과 오봉산 사이의 골짝에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 덮인 산길을 산행한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고. 그 걱정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산행을 하기 위해 주차장에 모인 사람들 중 눈 속의 산행이라 삼봉산 등산은 어려울 것 같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우리 산행팀 말고. 다른 산행팀은 삼봉산 대신 표고도 낮고 등반도 비교적 쉬운 오봉산으로 산행지를 바꾸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고민스럽던 차에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원래 계획했던 삼봉산 산행을 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져서 일단 오도재에 집결하기로 했다.오도재! 이 고개를 넘다가 어느 수도자가 도를 깨쳤다는 전설이 깃든 고개. 해발 773m에 이르는 이 오도재에서 출발해 오도봉을 넘어 해발 1.187m의 정상을 거쳐 인산농장으로 내려가는 총연장 5.7km의 산길을 걷는 것이 오늘의 산행계획이다.상림주차장에서 대절버스를 타고 약 40여명의 동참자들이 먼저 오도재에 도착했고 뒤이어 필자 역시 인산가 김윤세 회장과 함께 승용차편으로 도착하였다. 식수와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긴 뒤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참석한 주요 인사들에 대한 소개가 있었고 이 산행을 주관한 인산가 김 회장의 산행일정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이윽고 시작된 산행은 눈길에 미끄러짐과 다소 추운 날씨 탓에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다는 예감 속에 오전 9시30분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40여명의 참가자중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는 6명의 아이들도 있어서 더욱 산행이 쉽지 않다는 것을 예고해 주는 듯했다.약 20여분쯤 산길을 오르니 제법 눈이 쌓여있어서 아이젠 착용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삼삼오오 모여앉아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는 사람도 있었고 필자 역시 준비한 아이젠을 꺼내 착용했으며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서로서로 한쪽씩 나눠 신거나 그대로 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금 안전산행에 필요한 장비와 비상식량. 방한복 등은 산행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스스로 준비해야한다는 철칙을 생각하게 한다. 이내 운동화를 신고 온 아이들이 약간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면서 미끄러져 주저앉고 넘어지며 힘겨워하기 시작했다. 오르면 오를수록 눈이 점점 많아지면서 아이들은 더욱 괴로워하고 힘겨워하면서 지친 걸음을 이어갔고 김윤세 회장과 그 아이들을 부축하느라 덩달아 앞뒤로 가던 사람들조차 차츰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겨울산행에 있어서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등반기술이 미흡하게 되면 산행 길은 즐거움은 고사하고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요. 괴로웠던 추억으로 뇌리에 각인될 것이 뻔하다.온통 흰 눈으로 덮인 하얀 세상. 하얀 눈 위로 난 산길을 걷고 또 걷는다. 눈앞에 펼쳐지는 백색의 또 다른 세계 속으로 하염없이 걷고 또 걸으며 마치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펼쳐지는 신천지로 들어가는 상념에 젖어본다. 형형색색의 온 세상을 하얀색으로 뒤덮는 백설(白雪)은 오탁악세(五濁惡世)의 세상을 순결무구의 깨끗한 세상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 유종원의 시가 생각난다. 온 산에 새 날음이 끊어지고모든 길에 사람의 발자국 사라졌네.외로운 배에 도롱이 쓴 한 노인눈 내리는 강위에서 홀로 낚시를 하고 있네.千山鳥飛絶 萬逕人踪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눈은 이처럼 세상을 하얗게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더없는 적막 속으로 사람들을 인도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 시간을 걸은 끝에 1035m의 오도봉에 당도한다. 먼저 당도한 김윤세 회장이 아이의 부모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가락으로 먼 산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먹구름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저 봉오리가 삼봉산 정상이고. 이렇게 걸을 경우 얼마가 더 걸릴지 알 수도 없으려니와 이미 지쳐버린 이 아이들을 데리고 험준한 눈길 산행을 계속 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세 아이의 부모들은 김 회장의 설명을 듣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더 이상 산행을 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을 했던지 발길을 돌려 출발했던 오도재를 향해 하산을 시작한다. 김 회장과 필자. 그리고 인산가 직원 몇 명은 멀리보이는 삼봉산 정상을 향해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한다. 30분쯤 걸었을 때. 앞서 가며 힘겨워하는 딸과 아버지를 발견한 김 회장은 또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고 자꾸 미끄러지려 하는 초등생 여아의 팔을 잡고 눈 덮인 비탈길을 오른다. 12시 20분 무렵 아이의 팔을 잡고 오른 김 회장이 먼저 도착하고. 뒤이어 필자와 아이의 아버지. 인산가 직원들이 도착해 정상에 다들 모였다. 먼저 도착한 이들이 정상 표지석 앞에 자리를 펴고 조촐한 제상(祭床)을 마련해 놓았다. 김회장의 헌주(獻酒)와 축문(祝文) 낭송으로 산제(山祭)가 시작되었고 한해의 건강과 행복을 축원하면서 모든 동참자들은 재배(再拜)하여 산제를 마친 뒤 술과 음식을 권하며 덕담을 나눈다.정상에서 서쪽을 향해 난 내리막 비탈길은 경사가 몹시 심해 모두들 힘겨워 하면서 조심스레 내려갔다. 10분쯤 내려갔을 때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초등학생 남아가 비탈길에서 미끄러지며 계속 넘어지자 김 회장이 다가가 아이의 팔을 잡아주며 조심스레 내려가기 시작한다. 삼봉산 주능선에서 북쪽으로 난 인산농장 가는 길은 경사가 심한데다 북사면이라 눈이 많이 쌓여 한층 더 미끄러웠다. 여기저기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구르며 비명소리.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는다.김 회장은 아홉 살 배기 초등생(하정무)의 팔을 잡고 비탈길을 지나 큰골을 다 벗어나 인도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아이와 함께 했다. 필자는 정무의 형 정민이의 팔을 잡아주며 인도에 다다를 때까지 줄곧 보살펴 주면서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돌봐주느라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도 제대로 감상할 마음의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두 초등학생들은 연거푸 미끄러져 넘어지면서도 유연성이 뛰어나고 중심을 잘 잡음으로써 다친데 없이 무사히 비탈길 하산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3시간 30분 가량의 힘겨운 산행 끝에 임도에 도착해 길을 걸으니 그제사 흰 눈 속의 별천지가 다시금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오늘 필자는 다른 동참자들과 임도를 걸으며 또 다른 별천지에서의 행복을 음미하면서 4시간 남짓 꿈꾸듯 산행을 즐겼다. 김 회장은 주변사람들에게 산길을 걷는 것 역시 훌륭한 참선의 한 유형이라고 들려준다. 즉. 생각하며 걷는 산행은 행선(行禪)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오늘 삼봉산 산행에 동참한 40여명의 산행객들은 4시간 동안 세사(世事)를 잊고 무아(無我)의 경지에 들어 참선수행을 하는. 다시 말해 행선(行禪)의 법열(法悅)을 만끽한 것이다. 행선의 기쁨을 그 무엇에 견줄 수 있으랴. 이 명산 산행의 의미와 가치는 그래서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12시 30분부터 1시 30분 사이에 인산 연수원에 도착해 인산가에서 준비한 떡국과 막걸리로 명산 산행의 대미(大尾)가 장식되었다. 40여명의 산행 동참자들은 식사를 마친 뒤 ‘시광전’ 앞에 모여 기념촬영을 한 뒤 다음 산행 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저마다 기쁜 표정으로 귀환 버스에 올랐다. 2012년 임진년의 첫 산행인 삼봉산 산행은 동참자들에게 ‘행선(行禪)의 기쁨을 안겨준 첫 산행’으로 기억될 듯싶다.▲ 우성숙 / 인산가 이사. 설악산자연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