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TalkTalk88회장醬은 장(將)이다 장은 모든 맛의 으뜸이니 가장은 모름지기 장 담그기에 뜻을 두어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어야 한다. - 유중림 <증보산림경제> 중에서 ▲ 메주 만드는 아이들장(醬)이란 적당한 농도의 소금을 사용하여 식물성단백질이 풍부한 콩을 미생물 작용으로 분해해 향미를 내게 한 저장성 발효식품으로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장은 우리의 밥상에서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조미료나 양념으로 주재료의 맛에 깊이를 주고 풍미를 더해주는 중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해 왔다. 신라의 신문왕이 부인을 맞는데 납폐 품목 중에 쌀. 술 등과 함께 매주와 장이 들어 있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 보아도 장이 우리의 밥상에서 얼마나 대접받는 식품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 잘 익은 장290년경에 쓰인 중국의 문헌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장 담그기와 술 빚기의 솜씨가 훌륭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며 우리 민족이 일찍부터 발효식품을 잘 만들었음을 증명해주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장의 처음 모습은 간장과 된장이 섞인 걸쭉한 형태의 혼용장(混用醬)이었으며 삼국시대부터 그 혼용장에 용수를 박아 간장과 된장을 분리해서 단용장(單用醬)으로 사용하였던 것이 지금의 형태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1058년에 나온 <고려사> 식화지(食貨志)에 의하면 몇 차례에 걸친 거란의 침입으로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백성들에게 구황작물로 쌀·조·된장이 지급되었다고 하니 장은 단순한 조미료의 역할을 넘어 구원의 식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장 가르기궁중에서는 ‘장고마마’라 하여 장을 담그는 상궁을 따로 두고 장독을 관리하였다고 하며. 자하문 밖에 메주 전문가를 따로 두어 검정콩으로 만든 ‘절메주’를 이용해 장을 담근 기록도 남아 있다. 민가에서도 장광을 따로 두고 숙성이 끝난 장을 저장해 두고 먹었다고 하니 궁중에서든 민가에서든 우리 조상들의 식생활에서 장이 차지하는 자리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민족의 역사만큼이나 장구한 역사를 가진 장류는 40여종의 문헌에서 250여종이나 언급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구황촬요>. <주방문>. <사시찬요>. <요록>. <고사신서>. <산림경제> 등에 장을 담그는 방법이나 메주를 만드는 방법이 자세히 나와 있는데 특히 1776년에 유중림이 쓴 <증보산림경제>에서는 장 담그는 구체적인 방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장(醬)은 장(將)’이라 하여 장이 모든 맛의 으뜸임을 밝히고 있으며 ‘가장(家長)은 모름지기 장 담그기에 뜻을 두어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어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 장 항아리1800년대에 이르러 빙허각이씨는 <규합총서>를 통해 ‘밥 먹기는 봄같이 하고. 국 먹기는 여름같이 하며 장(醬) 먹기는 가을같이 하고. 술 먹기는 겨울같이 하라’고 하여 장이 밥·반찬과 함께 조상들의 밥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말하고 있으며 각종 장 담그기의 요령도 전하고 있다. 전해오는 말에 품격 있는 마님을 일컫는 표현으로 ‘서른여섯 가지의 김치를 담그고 서른여섯 가지의 장을 담글 줄 아는 며느리’란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의 장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말이기도 하며. 또한 장의 종류가 다양한 것은 각 가정에서 그 가정마다의 장 담그기 비법이 있어 며느리의 며느리를 통해 전승해 내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말썽 많은 집안의 장맛이 쓰다.’거나 ‘집안을 알려면 장맛을 보라.’는 등의 속담을 통해서도 우리 조상들의 식생활에서 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이웃의 어른이 돌아가시던 해에 유난히 장맛이 썼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전쟁이 나던 해에 집집마다 장이 모두 망가졌었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은 기억도 있으니 장을 담근다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한 가정의 연중행사를 넘어 우리 민족의 혼과 얼을 담는 비장한 의식과도 같은 것이라 여겨진다.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