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TalkTalk78회수수팥떡을 해주며 지켜 가는 우리의 음식문화 ▲ 영화 '붉은 수수밭'수수를 보면 늘 오래 전에 본 ‘붉은 수수밭’이란 영화가 떠오른다. 지금도 예쁘지만 어리고 예쁜 공리가 주연을 하였던 영화로. 영화의 곳곳에서 드넓은 붉은 수수밭 가운데를 말(?)을 타고 다니는 붉은 옷을 입은 공리의 모습이 보이는데. 어렴풋하나 그 붉은 색은 불타오르는 정념을 의미하기도 하고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피의 역사를 상징하기도 하였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공리는 수수를 이용해 고량주를 만드는데 고량주의 이름에 있는 고량(高粱)은 수수의 한의학적 이름이다. ▲ 수수술의 재료로는 멥쌀이나 찹쌀. 조 등 다양한 재료가 쓰이지만 유독 중국에서 만들고 있는 고량주의 도수가 높은 이유는 술을 제조하는 방법의 차이도 있겠지만 짧은 소견으로 생각하기에 성질이 따뜻하고 고량미강으로 빚은 다른 곡물로 빚은 술보다 더 붉은 색을 띠며 독한 술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 수수는 열대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작물로 찰수수와 메수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찰수수를 밥에 놓아먹거나 아이들의 생일 음식. 혹은 팥을 넣은 부꾸미를 해서 먹는다. 겨울 명절을 즈음해서는 엿을 고아 먹기도 하지만 술을 빚는 용도로는 자주 이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수수밭수수는 떫으면서 단맛을 가진 곡물로 성질이 따뜻하며 독은 없고 비. 위. 대장 등 소화기를 이롭게 하는 작물이다. 수수가 가지는 떫은맛은 설사를 멈추게 하며. 수수의 따뜻한 성질은 소화기를 따뜻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므로 소화를 잘 되게 하는 효능을 가진다. 소화기를 튼튼히 하므로 먹은 음식물이 온전히 우리 몸의 기운을 더하는데 쓰이도록 돕는 작용도 한다. 수수대의 뿌리는 천식을 그치게 하고 이뇨 작용이 있으며. 지혈을 시키고. 경기를 그치게 한다. 수수는 성질이 따뜻하므로 여름보다는 겨울철에 먹으면 좋은 곡물이다. 밥을 할 때 찹쌀 한 줌과 수수 한 줌을 섞어 하면 찰기가 있는 맛좋은 밥을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수와 찹쌀의 따뜻한 성질이 겨울의 강한 추위로부터 우리의 몸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우리의 몸은 추위 때문에 열량이 많이 부족하게 되므로 기름을 두르고 지지는 수수부꾸미를 해서 꿀이나 조청을 찍어먹으면 자연스럽게 부족한 열량이나 영양소를 공급받게 된다. ▲ 수수부꾸미친정어머니께서는 내 나이 열세 살이 될 때까지 수수팥떡을 해주셨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생일이 되면 언제나 아침에 미역국을 먹고 학교에 다녀오면 어머니께서는 수수팥떡을 해놓고 나를 기다리셨다. 아침에 먹은 미역국은 인덕(人德)이 있으라고 끓여주는 것이고 이 수수팥떡은 내가 어른이 되기 전까지 나쁜 귀신이 나를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것이라며 꼭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동지가 되면 붉은 팥죽을 쑤어 먹으면서 역질귀신을 쫓고자 했던 것처럼 수수와 팥의 붉은색이 귀신을 쫓는다고 믿는 어머니의 신앙과도 같은 자식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 수수팥떡그래서 나도 내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빼놓지 않고 수수팥떡을 해주었다. 딸아이도 크게 거부감 없이 엄마나 할머니의 사랑을 받아들였으니 아마도 할머니의 할머니. 혹은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져 내려온 이런 대물림의 역사가 우리의 음식문화나 음식철학을 지켜 왔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ggum234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