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특수를 보낸 뒤 시장은 조용하기 마련이다. 대목을 지냈으니 한번 쉬어가는 때, 명절연휴가 끝난 첫 장날 지리산인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지리산함양시장에 있는 영호수산을 찾았다. 서상면에 사는 한 고객이 딸과 함께 영호수산을 찾아 물건을 사고 있다. “여기 주인이 서상 장날에도 오시거든요, 사장님이..
시어머니가 50여년 간 운영했던 가게를 며느리가 이어가는 곳, 지리산함양시장의 ‘시장수산’이다. 시어머니 대를 이어 며느리 강정자(59)씨가 가게를 물려받았다. 사실 이 가게는 돌아가신 시어머니 양차남씨가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에 3대째 이어진 곳이다. 당시에는 아침저녁으로 고무대야에 생선을 ..
1960년대 ‘꽃님이 시집갈 때 부라더 미싱’이란 광고가 나오던 그때는 미싱이 대중화되어 집집마다 보급되던 시절이다. 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값을 치르겠다며 미싱을 사가던 손님도 있었다는 그 때, 함양에도 ‘부라더 미싱’이 문을 열었다. 1969년 9월 군대를 제대한 양도운(78)씨는 장사밑천 80만원으로 미싱 1..
“오늘 점심은 중화요리 어때?” 하고 결정하면 또 한 번 고민에 빠진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메뉴를 결정하지 못한 채 수동면 연화루에 문을 열고 들어선다. 짜장, 짬뽕이 머릿속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는 동안 옆 테이블에 나온 음식을 보면 볶음밥, 아니 탕수육까지 머릿속 메뉴에 추가된다. 연화루에서는 메뉴 선..
197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거창에 있는 축협에서 일을 하게 됐다. 8월1일 첫 출근하여 일을 하면서도 월급이 얼마인지 몰랐다. 거창 장날이던 16일 땀범벅이 되도록 바깥일을 하고 돌아오니 노란봉투가 쥐어졌다. 첫 월급봉투에는 1000원짜리 39장이 들어 있었다. 자장면은 150원, 소고기 한 근은 50..
“짧은 바지에 장화 신고 머리도 깔끔하게 감싸고 앞치마 단단히 홀쳐매고 들어와야지” 주방에서 일하려는 사람은 복장을 보면 마음자세를 알 수 있다. 18세 때부터 식당보조로 일하며 ‘최고의 요리사’를 꿈꿨다는 이명자(63세)씨의 말이다. 함양군 마천면 추성 벽송사 골짜기에서 태어난 이명자씨는 열여덟 되던..
귀촌을 준비해 온 김규식씨는 2년 전부터 주말농부를 자처하며 고향땅을 밟았다. 진주에서 함양으로 매주 오가던 김규식씨는 산청을 지나다 활짝 핀 백일홍을 보고 씨를 받아두었다. 그는 15평 가량 되는 자신의 밭에 모종을 키워 1만 포기의 백일홍을 가꿨다. 마을사람들은 그때까지 이 백일홍이 온 마을에 심겨지..
구순을 넘긴 시어머니(마기연·91)가 지리산함양시장에서 기어이 야채장사를 하시겠단다. 젊은 시절부터 장사를 해 오셨지만 자식들의 만류로 시장에 발을 끊었다가 큰아들 내외가 농사지은 시금치를 팔아주기 위해 다시 재래시장에 판을 펼쳤다. “어머니는 4남2녀를 두셨고 남편이 큰아들이죠, 다른 자식들은 말끔..
남편에겐 계획이 다 있었다. 직장 때문에 이들 부부는 도시에서 살았다. 어느 날 남편은 아내에게 캠핑을 가자고 말했다. 아내허락도 없이 텐트를 지른 후였다. 캠핑에는 별관심이 없던 아내의 시큰둥한 반응에 남편은 “몸만 가면 된다”는 말로 유혹했다. 남편의 말만 믿고 2008년 12월24일, 돌도 지나지 않은 둘..
빨강, 노랑, 주황, 초록 색깔도 다양하고 효능도 다양한 농작물이 있다. 눈치껏 어떤 작물인지 맞췄겠지만 역시 맞다, 파프리카. 아삭한 식감으로 입맛을 돌게 하고 시원한 단맛을 내는 파프리카. 뼈 건강에 좋고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빨간색 파프리카, 항산화작용이 가장 뛰어난 주황색 파프리카, 칼로리가 적어 다..
새벽5시, 칠순을 바라보는 마라토너는 늘 그래왔듯 약10㎞ 구간의 마을 우회도로를 뛰기 시작한다. 컨디션을 조절해 가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뛴다. 이 때는 동호인들이 추천해 준 단전호흡법을 따라 해 보기도 한다. 천천히 또는 빨리, 구간구간 방법을 달리 해 가며 나에게 맞는 호흡과 자세를 찾아간다. 그렇게 ..
어묵을 좋아한다면 ‘부산어묵’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함양에서 어묵을 먹겠다면 ‘부산즉석오뎅’을 찾아가야 한다. 지리산함양시장에서 수제어묵을 21년째 판매했으니 모르는 사람은 없겠으나 시장에 들러 옛 가게를 찾아갔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오뎅집이 오데로 갔노”2000년10월12일이 개업일인 ‘..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이에게는 와 닿지 않을 ‘귀향의 꿈’, 금의환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젠가 고향 품으로 돌아오겠다는 의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 힘의 원천은 아마도 추억이지 싶다. 타지에 살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노래를 불렀다는 김병도(67세)씨는 2008년 그 꿈을 이뤘다. 30여년의 교직생활을 ..
“꽃집에 아가씨는 예뻐요~♪”라는 노래 또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정말이라고 한다면 젠더감수성을 따지려는 이도 있겠지만 ‘꽃과 여인’이 아닌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이라고 해 두고 싶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아름다울 꽃집 여인도 가까이에서 보면 거친 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것이다. 오늘은 지리산인을..
‘83세’ ‘노인’ ‘테니스를 친다’는 제보에 당장 달려가 만난 그 분은 평범했던 기자의 인생에 훅 들어왔다. 스승님 혹은 인생의 대선배쯤의 위치로 말이다. ‘노인’ ‘어르신’ ‘선생님’ 같은 호칭은 날려 버리고 지금부터 이분을 ‘이과장’이라 부르려 한다. 코트장에서 사람들은 이분을 이과장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암괴석으로 알려진 설악산 울산바위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다. 생뚱맞게 설악산에 자리한 울산바위처럼 함양에도 그와 버금가는 ‘울산식당’이 있다. 울산과 연고가 있는 사람이 주인일까 싶지만 울산식당의 주인은 함양 신당골 사람이다. 울산식당은 30여년 동안 한 자리에서 한 가지..
지곡면에 단 하나밖에 없는 떡방앗간에 새 주인이 들어왔다. 지곡면사무소 부근에서 30~40여년 독점해 온 지곡떡방앗간을 2018년 7월경부터 젊은 부부가 맡게 된 것이다. 남편은 방앗간을 찾는 손님 중 모르는 사람이 없고 모르는 집이 없다. 쾌활한 성격에 인사성도 밝고 손님들에게 말도 잘 건넨다. 그 옆에서 자기..
손으로 농사짓던 시절도 옛 이야기다. 기계의 도움으로 논을 갈고 밭을 일구고 작물을 심는다. 양파농사가 시작되면서 함양의 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겨우내 조용했던 이곳이 분주해 진걸 보니 농민들의 마음도 바빠진 모양이다. 농민에겐 멀리 있는 자식보다 더 고마운 존재가 농기계다. 함양에서 농기계를 수리하..
소문난 맛집이나 대대로 내려오는 종가음식의 대가에겐 ‘씨간장’이 있기 마련이다. 윗대로부터 대불림해서 내려오는 맛의 비결을 유지해 주는 힘이 바로 ‘씨간장’인데 족발집에 ‘씨간장’같은 ‘씨종물(씨족물)’이 있다면 황금레시피가 부럽지 않을 것이다. 함양에도 평생 족발집을 경영하셨던 어머니가 남긴 ..
식물에 조예가 깊고 꽃을 잘 키워 아파트베란다를 정원으로 꾸며놓았다는 ‘티파니’의 소문을 듣게 됐다. 식물 전문가도 인정했다는 ‘티파니’를 찾아 아침부터 그녀의 집을 습격했다. 티파니의 베란다 정원은 26년 전에 지어진 아파트에 숨어있어서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