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의사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것은 30여년 간 응급실을 운영한 것이죠. 365일 24시간 병원에 붙어 있으면서 자유도 없었고 친구를 마음대로 만날 수 없었어요. 밥을 먹다 달려와야 했고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밤사이 대여섯번을 불려나온 적도 있어요” 함양성심병원 창립자 정해일(73) 원장이 지난 시절을..
50년간 농사를 지은 한 농부의 새로운 도전으로 함양에서도 한라봉이 재배된다는 신박한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지곡면 남효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강석균(68세)씨. 함양, 거창에서 유일하게 한라봉을 재배하는 농가다. 지인으로부터 받은 귤나무가 강석균씨를 한라봉 재배까지 이끌었다. “20년 전 귤 나무 한 ..
지리산함양시장 안에 “새로 생긴 가계인가?” 싶은 ‘사과나무떡집’이 있다. 상호가 바뀌어 새로 생겼다 할 수 있겠으나 이곳은 1962년부터 내려온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정연관·김현옥 부부가 운영하는 ‘사과나무떡집’은 현옥씨의 친정부모님이신 김정섭(84) 이막달(81)씨가 해 오던 ‘삼성떡방앗간’을 물려..
1966년 9월3일부터 이곳 터(지리산함양시장 제2주차장 부근)를 지키고 있는 맛나식당.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는 맛나식당의 문이 열리며 한 남성이 들어온다. “안보이데” 맛나식당의 최고손맛을 자랑하는 유정임(85세) 어르신이 짧게 말을 던진다.“요 며칠 좀 바빴심니더” 문 앞 테이블에 서슴없이 앉는 ..
2010년대 초중반 함양군은 ‘태권도의 메카’로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초·중·고 학생의 두터운 선수층에 해마다 경남도 대표를 여럿 배출해 타 지역의 부러움을 샀다. 그 시절 태권도 선수 발굴, 육성의 현장이던 이곳, 선수들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동성태권도를 찾았다. 동성태권도는 좀 낯설법한 여성 ..
우리는 자신의 꿈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어떤 도전을 해 보았는가. 여기 자신의 꿈을 위해 가방을 싼 십대 여고생이 있다. 어릴 때부터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이었던 김아정(25)씨는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언니 김민지(28)씨가 부산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자 부모님을 설득한다. 대학생이 된 언니와 함께 살..
함양군의 가장 번화가는 누가 뭐래도 동문네거리다. 유동인구가 많은 이곳 동문네거리는 함양의 최고 상권을 자랑한다. 하지만 빼곡히 들어선 건물에 입주해 있던 가게는 세월에 따라 변하고 바뀌기도 수십번. 똑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름, 같은 주인이 가게를 운영하는 곳은 몇 되지 않는다. 횡단보도 바로 앞 ‘쌍방..
40여년 전 함양의 시골은 삶이 팍팍하던 때다. 함양군 백전면에서 3남3녀를 키우시던 어머니는 매일 땟거리 걱정에 고민이 깊었다. 어머니는 비싼 쌀 대신 밀가루로 칼국수, 수제비를 끓여 가족의 끼니를 때웠다. 박재천(50)씨가 칼국수집을 하게 된 사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가난하던 시절 너무 많이 먹던 음식이..
겨울철 동트기 전 이불속에 잠든 몸을 한 번에 일으키기란 쉽지 않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며 십분만, 일분만을 되뇌다 보면 지각하기 십상이다.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0년간 새벽을 연 이춘세(57)씨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하루였다. 그가 눈뜨는 새벽시간은 5시30분, 그의 업무는 6시30분부터 시..
아직 잠들어 있는 새벽시간,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있다. 신문배달원, 우유배달원, 환경미화원... 이들을 따라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면 함양시외버스터미널 어디쯤에 도착할 수 있다. 터미널을 떠나는 첫차는 오전6시 출발하는 진주행. 이른 아침 첫차를 배웅하는 것은 매점 불빛. 아침을 여는 또 한 사람 한정순(8..
아이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는 어른, 잔소리 하지 않고 지지해 주는 어른, 돈이 필요할 때 전화할 수 있는 어른, 부모님과 연락이 안될 때 대신 와주는 어른, 어렵지 않고 만만한 어른.백전면에 있는 ‘다함께 사이좋은 마을학교’ 모임의 어른들 모습이다. ‘다함께 사이좋은 마을학교’는 백전초등학교 학부모와 온..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하늘에 맡길 일인가, 자연을 거슬러야 할 일인가. 농사에는 햇빛과 물과 흙이 필요하다지만 요즘처럼 이상기온엔 속수무책 농사를 망치기 십상이다. 인공적인 힘이 필요한 때인지, 자연에 믿고 맡겨야 할 때인지 해답을 찾기 어렵다. 서하면 청춘농원의 박춘호(45) 대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
매일 반복되는 직장인의 고민은? ‘오늘 점심 뭐먹지?’가 아닐까. 매일 점심을 밖에서 해결해야 한다면 메뉴를 고르는 게 결코 쉽지 않다. 뭐든 다 있는 뷔페식당을 떠올리긴 하지만 간혹 ‘가짓수는 많아도 먹을 게 없는 곳’이 뷔페라 하는 이도 있다. 뷔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떨치고 싶다면 여기 ‘지리산밥상..
요즘처럼 변화무쌍한 시대에 자신의 일이 ‘천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설령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하더라도 경쟁력을 발휘하고 사회에 통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더 진부하게 느껴지는 ‘천직’을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다.“34년 전입니다. 3월15일..
먹이사슬로 볼 때 최고 우위에 있는 인간으로 살다보니 생태계 저 아래에 있는 지렁이에게 관심을 돌릴 일은 거의 없다. 비 온 뒤 길 위에 출몰한 지렁이를 보고 깜짝 놀랄 일 말고는 지렁이가 우리의 일상을 침범할 일도 생기지 않는다. 그랬던 지렁이가 요즘 존재감을 드러냈다면 그건 아마도 TV예능프로 ‘도시어..
어떤 일을 도모하고자 할 때 ‘엄마와 딸’의 조합은 꽤 괜찮은 궁합이다. 딸은 야무지고 이성적이며 엄마에 대한 시선이 의외로 냉철하다. 엄마는 부드럽고 후덕하며 삶을 통해 얻은 모든 것이 노하우가 되어 지혜롭다. 이런 찰떡궁합 엄마와 딸이 함양군 서상면에서 수제반찬가게 ‘영키친’을 열었다. 유..
명절특수를 보낸 뒤 시장은 조용하기 마련이다. 대목을 지냈으니 한번 쉬어가는 때, 명절연휴가 끝난 첫 장날 지리산인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지리산함양시장에 있는 영호수산을 찾았다. 서상면에 사는 한 고객이 딸과 함께 영호수산을 찾아 물건을 사고 있다. “여기 주인이 서상 장날에도 오시거든요, 사장님이..
시어머니가 50여년 간 운영했던 가게를 며느리가 이어가는 곳, 지리산함양시장의 ‘시장수산’이다. 시어머니 대를 이어 며느리 강정자(59)씨가 가게를 물려받았다. 사실 이 가게는 돌아가신 시어머니 양차남씨가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에 3대째 이어진 곳이다. 당시에는 아침저녁으로 고무대야에 생선을 ..
1960년대 ‘꽃님이 시집갈 때 부라더 미싱’이란 광고가 나오던 그때는 미싱이 대중화되어 집집마다 보급되던 시절이다. 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값을 치르겠다며 미싱을 사가던 손님도 있었다는 그 때, 함양에도 ‘부라더 미싱’이 문을 열었다. 1969년 9월 군대를 제대한 양도운(78)씨는 장사밑천 80만원으로 미싱 1..
“오늘 점심은 중화요리 어때?” 하고 결정하면 또 한 번 고민에 빠진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메뉴를 결정하지 못한 채 수동면 연화루에 문을 열고 들어선다. 짜장, 짬뽕이 머릿속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는 동안 옆 테이블에 나온 음식을 보면 볶음밥, 아니 탕수육까지 머릿속 메뉴에 추가된다. 연화루에서는 메뉴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