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섭함양읍사무소 자치센터 한글 교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20여명의 할머니 학생들은 칠판에 써 놓은 글을 보고 따라 쓰느라고 여념이 없고 나는 학생들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그들이 글자를 바르게 쓰고 있는지 행여 틀리게 쓰지나 않는지 살피는데 한 할머니가 지나가는 나를 보고 일어서더니 “선생님 참 고마워요”하면서 허리를 깊숙이 숙여 절을 한다. 나는 새삼스레 그게 무슨 소린가 하는 생각으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그 할머니가 “나 혼자서 화장실을 찾아갔었어요” 한다. 그래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고 있으려니 그가 자세한 이야기를 한다.그저께 동네 사람들과 함께 계룡산 관광을 다녀왔는데 관광버스가 휴게소에서 쉴 때 혼자 화장실 안내판을 보고 화장실을 찾아가서 볼일을 보고 왔다고 한다. 전에는 관광을 다닐 때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다녀 올려 해도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다른 사람들 따라만 다녔었는데 이번에는 자기 혼자서 화장실을 찾아 다녀왔단다. 이제는 글자를 알아보니 어디가 화장실인가를 알 수 있어서 혼자 다녀도 겁이 나지 않는단다.그런 말을 하면서 이게 다 선생님 덕이 아니냐고 새삼스레 고마운 생각이 나서 인사를 드린다면서 쑥스러우면서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 말을 엿들은 주위의 할머니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하고 자기들이 겪은 비슷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아 한동안 교실 안이 소란스러워 졌다. 상점의 간판도 알아보았다는 할머니. 지나다니는 다리 이름도 읽어보았다는 할머니. 손자들이 가지고 다니는 책들이 이게 국어책이고 이게 산수 책이라는 것도 구별 할 수 있다는 할머니. 집배원이 가져다주는 편지들도 어디서 온 것인가를 알아보았다는 할머니...함양읍사무소 주민자치센터 한글 교실에서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을 상대로 글을 가르치기 시작한지 8년여가 되었다. 읍장의 요청으로 한글 반 강사를 맡아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이틀씩을 하루 두 시간 동안 가르치는데 그 일이 교직에 머물다가 정년퇴임 한 내게는 가장 중요하고 즐거운 일이면서도 또한 보람도 느끼게 하는 일이다. 한글을 배우러 오는 학생들은 모두 할머니들이다. 나이가 나와 비슷한 70전후로 얼굴에 인생살이의 고달픔이 깊이 배어 있고 머리가 허옇게 바래서 삶을 마감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이다. 8년 전 처음 할머니들을 맡았을 때는 이들이 과연 글을 제대로 배워 나갈까 하고 걱정을 하였는데. 막상 글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보니 모두들 너무나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바람에 가르치는 나도 신이 나서 더 열심히 가르치게 되었다. 오전 10시에 공부가 시작되는데도 9시가 되면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출석하여 자기 자리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어떤 학생은 8시가 채 안되어 출석한다. 와서는 옆도 안 돌아보고 공부에 열중한다. 공부시간에도 일반 학교 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떠들거나 장난치는 학생이 전혀 없다. 모두가 모범생인 셈이다. 비록 늙은이들이지만 워낙 열심히 배우니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는 자기 이름도 못쓰던 이들이 이제는 글자를 제법 많이 알아 웬만한 글은 읽을 수 있다.읽기 공부와 겸해서 쓰기 공부를 많이 하는데 글자를 안 보고 쓴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쓰기 공부를 시작한지 일년이 넘었는데도 받아쓰기를 해 보면 틀리지 않게 쓰는 학생이 드물다. 나는 이들이 적어도 간단한 편지 정도는 쓸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 아래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 가정이 바빠서. 또는 건강이 나빠서 중도에 포기하는 할머니도 많았고 글을 어느 정도 읽을 줄 알아서 그만 둔 할머니들도 많았다.이렇게 한글교실에서 한글을 깨우치고 나간 할머니들이 수십명이 된다. 처음에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처럼 글자를 전혀 모르다가 한 두 달 후에는 제법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할머니들도 많았다. 비록 살아 갈 날들이 얼마 남지는 않았지만 글 모르는 평생의 한을 풀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배우는 저 늙은이들을 위해 나 또한 늙은 몸이나 저들이 한자라도 더 깨우칠 수 있도록 열심히 가르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정지섭함양읍 주민자치센터 한글교실 강사전 초등학교장
Select count(idx) from kb_news_coment where link= and !re_id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