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평교회 김지영 목사지금 가을 들녘은 온통 누런 황금들판입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고개를 숙이며 익어가는 누런 이삭들을 보면 마음이 저절로 풍성한 곡식으로 채워진 저장창고처럼 풍성해집니다.오늘 오랜만에 교회 식구들과 함께 벼이삭 탈곡하는 일을 거들고 나섰습니다. 겨우내 교회 식구들의 양식이 될 곡식을 탈곡하는 일은 참으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논 가장자리에 있는 벼들을 숫돌에 잘 갈린 낫으로 함께 베어냈습니다. 쓱쓱. 벼 밑둥이 베어지는 소리도 경쾌했습니다. 이슬이 마른 후에는 콤바인이 들어와 일사천리 놀라운 속도로 일이 끝날 듯 했습니다. 모두들 벼들이 눈 깜짝할 사이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나락이 되어 자루에 담기는. 쾌속으로 진행되는 추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콤바인이 멈춰 섰습니다. 뭔가 고장이 난 것 같습니다. 기계 안을 들여다보고. 엉키어 들어간 짚을 빼어보아도 기계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휴대폰으로 기술자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오전 내에 모든 일을 끝내고. 오후에 스케줄을 생각하며 여유롭던 내 안에 갑자기 초조함이 밀려 왔습니다. “언제 기술자가 와서 기계를 고칠까. 오늘 안에 추수는 다 할 수 있을까. 그러면 나머지 벼들은 손으로 베 내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돌발상황에 당황해 하면서 멍 하니 앉아 있는데. 수리하는 기술자를 기다리는 동안 누군가가 사과와 감을 가져왔습니다. 따사로운 가을햇살을 받으며. 바닥에 깔린 푹신한 짚에 둘러앉아서 정성스레 깎아주는 과일을 받아먹었습니다. 그리고 추수하는 자리에 함께 있어 고마운 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콤바인이 멈춘 동안 우리는 새파랗고 높다란 가을하늘과 갓 베어진 볏짚에서 나는 풀냄새와 과일을 나누는 정감어린 마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돈주고 살 수 없는 가을 오후의 잠깐의 쉼을 누렸습니다. 잘 나가던 기계가 고장나지 않았던들 이런 시간은 얻을 수 없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인생은 언제나 난처하고 예측불허인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돌발적인 상황을 잘 건너는 방법은 언제나 먼데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아주 내 가까이.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빠르고 신속하게 진행될 것 같은 인생을 살다가 뭔가 방해꾼이 끼어들어 갑갑한 마음이 앞설 때. 내가 있는 자리를 가만히 살피고 바라보면. 그 안에서 나에게 주는 뭔가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기계가 수리가 되어 다시 가을걷이가 이어졌습니다.자루엔 나락이 그득히 담기고. 오랜만에 추수하는 뿌듯한 농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참 감사했습니다. 우리의 팍팍한 농촌 현실도 어서 빨리 나락으로 불룩해진 자루처럼 풍성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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