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리교회 목사 김정형우연히 한문 사전을 보다가 발견한 한자숙어가 보이는데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한자를 보았다. 참 좋고도 힘든 말이다. 자기를 이기고(克己). 예의 법도로 돌아가 산다(復禮)는 말이다. 사람마다 자기를 이기려고 노력한다. 자기를 이기려고 하는 것은 “사회의 법도에 따라 살기 위함”이다. 또한 사회의 법도에 따라 산다는 것은 “타인을 괴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법도에 따라 서로서로 기분 나쁜 사람 없이 편리하게 살아가는 것이 예절이다. 그 예절로 돌아가 같이 살아가는 것이 복례(復禮)다. 사람이 자기 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다보면 타인이 괴롭다. 사람이 그 사회질서에 맞추어 살려면 자기 몸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해서는 안 된다. 추석이 며칠 전에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졌다. 즐겁고 기쁜 날 우리 아이들은 추석을 어떻게 지냈는가? 부모의 일이니까 마지못해... 가자고 하니까 마지못해... 그래서 친지들을 만나도 컴퓨터와 함께... 요즘 아이들의 실태다. 컴퓨터 앞에서 모든 아이들이 자라고 인격이 성장하고 있다.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을 보면 싸워 죽여야 끝이 난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극기는 잘한다. 그리고 문밖에 나가지 않는 극기만 익히고서 큰다. 그 극기를 지니고는 아무 곳에서도 살수 없고 더욱이 복례란 생각도 못할 단어가 되었다. 컴퓨터 앞에서 익힌 극기로는 복례를 할 수가 없다. 극기는 처음으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자기가 먼저 알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는 맨 먼저 숟가락 잡는 법부터 배운다. 그러자면 누군가가 가르쳐야 한다. 제대로 가르쳐 주기 위해서 달래기도 하고. 칭찬도 해주고. 꾸지람도 하고. 심지어는 때리면서 가르친다. 이것은 나아가서 사회질서를 가르치는 것이고 타인을 괴롭히지 않고 예의범절을 통해서 더불어 같이 살기 위함이다. 아이가 집안에 있을 적에는 집안의 예의범절만 배우면 된다. 그러나 문밖에 나가면 문밖의 질서가 있는데 집안에 사는 것처럼 내 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자기 몸을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되기에 괴롭다. 곧 문 밖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 몸이 괴로워야 한다. 옛 성인들이나 우리 친구들 중에서 일을 배우지 못했거나 건강상 일을 할 수 없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대접받고 존경받고 스승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복례(復禮)에 익숙하다. 즉 어떠한 예절에도 엎드릴 줄 안다. 잘못된 예절은 피할 줄 알고 옳은 예절에는 서슴없이 엎드린다. 혹 극기를 못하면 복례만 잘해도 된다. 그러나 극기와 복례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선택한다면 극기를 택하는 것이 좋겠다. 참 어렵다. 자기가 정해 놓은 예절과 극기가 있고. 한 가정이 정해 놓은 극기와 예절이 있으며. 마을마다 사회마다 국가마다 종교마다 정해 놓은 극기복례(克己復禮)가 다 다르다. 이것들이 같이 맞추어 살아가려면 그 와중에 복례가 아닌 무례(無禮)가 생긴다. 맞추어 살아가려면 서로 복례를 하면 간단하다. 그러나 행여 자기들이 정해놓은 예절로 돌아가 살라고 서로 하다보면 싸움이 일어난다. 다 다른 예절이 있으니 자기가 주장한 예절은 자기가 따르고 자기 밖의 예절이 있으면 그 예의에 극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예의인 것이다. 지금보다 더 바람직하고 나은 세상살이와 건강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정신과 마음이 건강하고 사회가 바로 되고 인류평화가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극기복례(克己復禮)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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