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3일 11시 함양군 안의면 화림동에 위치한 황암사에서 제415주년 황석산성 전투 추모제례를 거행하였다. 여기에는 박종근 군의회의장. 김종완 경찰서장. 정주환 전 거창군수 등 많은 내외빈이 참석하여 그 날에 승화한 당시의 안음현감 곽준과 함양현감 조종도. 거창좌수이며 황석산성 군무장 유명개와 정유문의 3형제와 춘수당 정수민의 아버지 정언남을 비롯하여 거창현. 안음현. 함양현 일반백성 7.000여명과 지금까지는 도망간 성주로 기록된 성주 백사림의 넋을 기리는 의미 있는 추모제례였다.황석산성 전투가 지금까지 알려진 왜군 27.000명이 와서 8월 16일 하룻밤 전투에서 공격을 한 왜군들은 한사람도 죽은 자가 없고 조선사람 500여명만이 죽은 이상한 전투가 아니라 안음현. 거창현. 함양현의 일반백성 7.000여명이 희로시마(廣島) 성주이며 우군대장인 모리데루모토를 비롯한 가또오 기요마사. 조오소가베 모도지가. 구로다 나가마사. 나베시마 나오시게 등 5개성 성주와 황석산성에 입성한 조선인 7천명보다 열배가 넘는 75.300명의 대군을 맞아서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5일간의 긴 전투에서 군인도 아닌 일반 백성들이 왜병정규군을 완벽하게 궤멸시키고 중과부적으로 산화하였다.본 행사는 황석산성 전투가 7년 임진전쟁을 종료시키는 결정적인 전투였으며 풍신수길을 신장과 간장이 오그라드는 고황병(膏?炳)으로 죽게 한 전투였음을 상기하는 중요한 행사였다.임진전쟁 중 특히 육전에서 왜군이 완벽하게 궤멸당한 이와 같은 사례는 찾을 수가 없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치욕적인 이 사건을 일본의 역사에서 지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자료는 조선의 문헌들에서는 모두 지워졌지만 그들의 역사서에서는 그대로 남아있다. 정유재침략을 위한 출동병력 편성 현황과 황석산성 전투에 참여한 부대장들에게 보내는 풍신수길의 감사장. 그리고 전주성에서의 재편성. 천안 북쪽의 직산전투의 양동작전 등 일본인 자신들이 기록한 역사적인 문헌에서는 그대로 남아있어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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