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평교회 김희수목사태풍 ‘볼라벤’이 올라온다. 기상청은 시속 50km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거대한 초강력태풍이 우리나라를 관통할 것이라고 예보한다. 내일 새벽 제주에 도착한다고 한다. 지금 우리 마을은 낮은 먹구름이 짙게 깔리고 심상치 않은 바람이 술렁인다. 저녁이 되면서 점점 고요해진다. 폭풍전야라는 말처럼 이 고요는 불안을 확장시킨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효과음이 공포를 증폭시키는 것처럼 먹구름 속에서 점점 어두워 가는 이 고요는 두려움을 자극하고 있다. 하루만 지나면 이 태풍이 다 지나간 후이리라. 그러나 어릴 적 불주사를 맞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내 차례가 다가오는 그 불안과 두려움이 나를 덮치고 있다. 누군가의 집이 산사태로 깔리게 되고. 누군가의 비닐하우스는 바람에 날려 거지처럼 누더기가 되어 있을 것이다. 거리에는 가로수가 뿌리 뽑혀 나뒹굴게 되고. 어느 집은 지붕이 날라갈 것이다. 누군가의 집은 침수되고. 누군가는 불어난 물에 쓸려가고...... 재난을 미리 내다보는 일은 쓰리고 아픈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 농민들이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땀 흘린 곡식과 과실들이 곧 수확기를 맞이하는데 태풍이 할퀴고 갈 상처를 생각하면 마음이 조린다. 이러한 아픔이 몰려온다고 생각하니 맘이 불안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소심했다. 마음도 여리고 걱정도 많았다. 이런 성격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라 노력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지금도 아이들이 나갔다가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고 걱정을 한다. 물론 걱정하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으랴마는 나는 보통 엄마들보다 조금 더 심하게 불안해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소풍날 비가 올까봐 불안했다. 대학시험을 치고 나서는 합격할 있을지 기다리며 불안해했다. 어디가 조금 아프면 불치병에 걸린 건 아닐까 불안하다. 요즘 뉴스를 보면 불안한 마음이 더 커진다. 전 세계적인 이상기온과 그로 인한 식량난. 늘어나는 ‘묻지마’ 범죄들. 지진과 홍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들까지 우리의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심리학에서 불안이란 뚜렷한 원인 없이 느끼는 근심이나 걱정. 두려움 등의 감정이라고 정의된다. 또 위험이 가까이 있다는 신호를 자아가 느끼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에서 어느 정도 불안이 나타나는 것은 불가피하며 이것이 정상적이라고 본다. 유명한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사랑했던 여인과 약혼을 하였다. 그런데 약혼 후에 그 여인이 자신으로 인해 불행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에 빠지게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이 그 여인을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 때문에 결국 그 여인과 파혼하고 만다. 조그만 문제만 발생해도 불안을 느끼는 그였기에 <불안의 개념-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역작을 썼는지 모른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의 앞날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원초적으로 불안한 존재이다. 불어오는 거대한 태풍 앞에서. 고칠 수 없는 질병 앞에서 우리 인간은 한없이 작아진다. 이 불안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내 안에 일어나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바라보며 나는 나를 바라본다. 나는 불안하기에 신을 의지한다. 불안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고. 연민을 가지고 이웃을 보게 한다.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내게 불안은 구원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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