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내백교회 목사 백믿음터이 민족에게 분단의 아픔과 비극을 불러온 6·25전쟁이 일어난 지도 어언 62주년이 되었다. 6·25 전쟁은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일어난 세계 전쟁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참혹한 전쟁으로. 3년 반 전쟁기간 동안 유엔군. 국군포함 18만 명 전사. 인민군 52만 명. 중공군 90만 명이 사망 실종. 민간인 99만 명이 인민재판으로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하고. 8만5천명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납북을 당하는 등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적 손실을 가져왔고. 전쟁 결과는 누구의 승패를 떠나 너무도 참혹했다.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지원국으로 병력 지원 16개국. 의료지원 5개국. 물자지원 42개국 등 모두 63개국이나 참전한 가히 세계전쟁의 축소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반도 산하를 폐허로 만든 처참한 전쟁이었다. 전쟁의 여파로 남한에서만 250만 명에 달하는 피난민이 생겨났고. 1천만 명의 이산가족을 낳게 한. 아직도 전쟁 세대가 가슴속 응어리진 한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인 6·25전쟁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요즘 학생들이나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6?25 전쟁이 조선시대 일본과의 전쟁 역사인줄 착각하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25가 조선시대에 일어난 전쟁으로 응답한 학생이 38%나 되었고. 5명중 1명꼴로 6·25가 일본과의 전쟁으로 알고 있는 등 자라나는 청소년들에 대한 보훈교육이 시급하다. 정치를 한다는 위정자들조차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리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볼 때 답답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북한이 우리와 한 민족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우리의 주적인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나 노무현대통령의 화친정책이 나쁘지 만은 않다. 하지만 우리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우리가 도와준 돈으로 핵무기를 생산하고 계속되는 무력도발을 일삼고 있다. 서해교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등 계속해서 무력도발을 일삼고 전쟁위협을 하는 북한에게 무조건적인 지원을 해주려는 정당들과 몇 몇 의원. 미군철수. 한미동맹파기를 외치는 의원들의 행동은 솔직히 내가 보기에도 종북주의자로 보인다. 한나라당도 국민의 지지를 못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툭하면 좌파니 우파니 진보니 보수니 하며 상대를 빨갱이로 몰아가며 기득권을 주장하기에 급급한 모습은 유치하기 그지없다. 아무튼 현실이 이렇다 보니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려는 의원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게 사실이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쟁과 평화를 선택하라고 하면 우리는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매일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는 북한의 행태를 받아주기만 하는 노예적 평화는 결국 북의 수중으로 들어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 대화에는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대화는 상호존중이고 서로의 이해와 공존이 가능할 때 하는 것이다. 경기에서 반칙을 하게 되면 퇴장을 당하기 마련이다. 반칙을 일삼는 사람이 오히려 자신이 정당하다고 떠들면 게임이 계속 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전쟁과 평화를 선택하라고 하는 자들은 다 망했다. 히틀러가 그랬고 이라크의 사담후세인이 그랬다. 전쟁과 평화는 선택사항이 아니다.톨스토이의 작품 전쟁과 평화는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전쟁만큼 인간의 발가벗겨진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사람의 참 모습을 연구하는데 전쟁만큼 좋은 소재는 없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전쟁을 생각하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잔인함과 고통을 떠올린다. 평범한 국민의 생각에는 전쟁이 과연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인지. 영원히 의문으로 남을 정도로 무익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60년 전에 일어났던 전쟁이 정치 사회적으로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볼 때. 전쟁의 그 파괴성은 물질적인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 또한 막대하다. 어떤 이유에서건 전쟁은 잔인할 수밖에 없다. 내 가족. 이웃이 직접적으로 희생당했다면 그것은 더욱더 잔혹한 전쟁이 될 것이다. 결코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톨스토이는 이야기한다. 나폴레옹 황제이든 알렉산드르 황제이든. 지도자 한 사람이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 다만 지도자는 국민들의 염원을 이용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전쟁의 피해는 이 소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상류층 보다는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지지 못한 일반국민에게 더 가혹한 징벌을 내린다. 국민 모두가 전쟁을 염원하지 않는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해 보지 않은 전후 세대가 많아지는 요즘의 우리나라에는 전쟁의 공포에 대해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전쟁에 대해 가볍게 던지는 말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생각들이 호전적인 지도자를 만나면 또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전쟁과 평화가 번갈아 시시각각 다가오는 국지적 분쟁 속에서 아직도 6·25의 상흔이 남아있는 분단의 아픔이 상존하는 자유 대한민국의 국민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까? 삶이 전쟁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늘 싸움과 전쟁이 있다. 인류가 존속하는 한. 늘 그러할 것이다. 누구나 희구하는바가 평화인데 늘 싸움이요 전쟁이니 참 역설적이다. 평화가 이상이라면 전쟁은 현실이다. 6·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총성 없는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세상은 전쟁터다. 이제 하지가 지나고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아름다운 석양에 감자를 캐어 보릿대에 불 붙여 구어 먹던 지난날의 평화로움이 그립다. ‘할 말이 있어요.’라는 창포의 꽃말을 되새기며 창포에 머리라도 감고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여 평화를 노래하고 싶다. 전쟁과 평화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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