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TalkTalk103회매우(梅雨)의 계절에 해먹는 보리밥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오월이라 중하(仲夏)되니 망종(亡種)·하지(夏至) 절기로다.남풍은 때맞추어 맥추(麥秋)를 재촉하니보리밭 누른빛이 밤사이 나겠구나.문 앞에 터를 닦고 타맥장(打麥場) 하오리라.(중략)∼ 보리밥 찬국에 고추장 상치쌈을식구를 헤아리되 넉넉히 능을 두소.- 농가월령가 오월령 중에서 ▲ 보리밭유월(음력 오월)은 여름의 두 번째 달로 중하(仲夏)라 불린다. 매실이 잘 영글라고 비가 자주 내리기 때문에 매실비라는 의미로 매우(梅雨)라 부르며 장마철을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태양의 기운인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달로 이 시기에는 모든 식물들이 쑥쑥 자라므로 오전에 본 논의 모가 오후에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자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니 농부들의 일손이 얼마나 바쁘게 돌아가는지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만한 계절이다. 음력 오월의 절기로는 망종(亡種)과 하지(夏至)가 있다. 망종이란 벼. 보리와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로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라’ 하여 보리를 모두 베어야 빈터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할 수 있으니 망종 무렵은 농번기 최고의 절정인 셈이다. ▲ 보리밥과 상추쌈망종을 전후하여 수확하는 보리는 서늘한 성질 때문에 여름철에 밥으로 해먹을 수 있는 아주 건강한 잡곡이다. 이른 아침에 삶아 건져 바구니에 담겨진 깡보리밥은 긴긴 여름날의 더위 속에서 겉은 마르고 색은 검어지고 더러 약간 쉬기도 하였지만 바깥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어머니는 아침에 삶아놓은 검게 변한 보리를 찬 우물물에 씻어 건져 적은 양의 쌀과 함께 밥을 해주셨다. 보리의 서늘한 성질은 쌀밥과는 달리 쉽게 상하지도 않지만 약간 상했다 하더라도 크게 탈이 나지 않으므로 제주도에서는 약간 쉰내가 나는 보리밥에 엿기름물을 부어 삭혀 먹는 음료로 보리쉰다리가 있다. 조상들의 지혜가 반짝이는 삶의 모습이다. 배를 주리고 살았으나 번뜩이는 기지와 낭만을 잃지 않았으니 보리쉰다리를 만들어내고 장맛비를 매화비(梅雨)라 부르며 망종·하지의 계절도 매우(梅雨)라 부른 선조들의 삶은 결코 주린 삶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 보리피리망종이 지나고 하지가 가까워 온다. 뭔가 잘못하여 어머니께 야단맞고 쫓겨 나가 사립 앞에 앉아 우는 나를 보리 줄기를 잘라 만든 피리로 삐리∼ 삐리∼ 하며 달래주시던 이웃 할아버지의 보리피리 소리가 새삼 그립다. 성인이 되고도 많은 세월을 보낸 지금은 배가 고파서 남의 밭이나 넘보는 일은 하지 않지만 넘실거리는 푸른 보리밭을 보면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린 시절 불어대던 보리피리 소리와 함께 검게 타고 몇 알 남지 않은 보리이삭을 주워 손으로 비비고 입으로 불며 먹던 수확 전의 풋보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엄마는 아침부터 밭에서 살고/ 아빠는 저녁까지 논에서 살고/ 아기는 저물도록 나가서 놀고/ 오뉴월 긴긴 해에 집이 비어서/ 더부살이 제비가 집을 봐주네 라며 노래한 이문구선생의 ‘오뉴월’이란 시를 읽으면 풋보리에 얽힌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워진다. 그러니 오늘은 하지감자 커다랗게 썰어 넣고 보리밥 지어 알싸한 고추장에 상추쌈 한 쌈 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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