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갑석 목사(금호교회)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다. 겨우내 말라있던 땅에 빗물이 스며들어가면서 양파나 마늘 등이 기운을 차리고 있다. 늦가을에 심어 채 뿌리도 내리기 전에 추운 겨울을 보내고. 새봄을 맞이하자마자 잎을 내며 자라기 시작하는 양파나 마늘 등을 보면 그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이렇게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에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생각하는 것은 지난 2월23일에 세상을 떠난 강영우 박사가 지인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를 보고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강영우 박사(1944∼2012)는 시각장애인으로. 한국계로는 처음 미국 백악관 차관보까지 올랐다. 14세에 축구를 하다가 망막이 파열되어 시력을 잃었다. 충격을 받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누나마저 얼마 뒤 부모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아니하고 서울 맹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에 들어가 1972년 문과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했다. 그 후 미국 피츠버그대로 유학하여 한국 최초 시각장애인 박사가 되었다. 2002년 강영우 박사는 조지 부시 대통령 임명으로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역임했다. 정책차관보로 6년간 일하면서 미국 5.400만 장애인을 대변하는 직무를 수행했고 세계장애 위원회 부위원장과 루즈벨트재단 고문 등으로 활동했다.강 박사는 지난 11월 췌장암 선고를 받았고 2∼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던 의료진들의 진단대로 지난 23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지난해 성탄절을 앞두고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행복과 축복이 가득한 내용의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지면상 그 일부분만 소개한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저는 참으로 복되고 감사한 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저의 실명을 통해 하나님은 제가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역사들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전쟁이 휩쓸고 가 폐허가 된 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두 눈도. 부모도. 누나도 잃은 고아가 지금의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덕분입니다. 실명으로 인하여 당시 중학생이라면 꿈도 못 꿨을 예쁜 누나의 팔짱을 끼고 걸을 수 있었고. 실명으로 인하여 열심히 공부해서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 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실명으로 인하여 책도 쓸 수 있었고. 세상 방방곡곡을 다니며 수많은 아름다운 인연들도 만들었습니다. 늘 여러분의 곁에서 함께하며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보다 간절하나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여러번 병원에서 검사와 수술. 치료를 받았으나 앞으로 저에게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 의료진들의 의견입니다. 여러분들이 저로 인해 슬퍼하시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작은 바램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끝까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렇게 하나. 둘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할 시간도 허락 받았습니다.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인사 드려야 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점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하였고. 은혜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12월 16일 강영우 드림”인생의 살아오는 과정도 훌륭하지만 아름다운 마무리를 통해 그의 삶이 더 아름답게 빛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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