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덕오 논설위원상림숲은 인공림으로 조성되었지만 이미 천년 이상을 견뎌낸 자연화(自然化)된 숲이다. 최치원 선생의 애민정신과 선각자의 안목과 지혜가 담긴 상림숲을 가진 우리 함양인은 긍지와 자랑으로 삼고 살고 있으며 이미 우리의 정신적 유전자속에 상림숲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50대 이상의 연령층은 곤충채집. 식물채집을 위해 상림숲으로 달려가 각종 나비와 풍뎅이. 하늘소. 장수풍뎅이. 왕잠자리 등을 채집했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다양한 곤충류를 모두 볼 수 없어 아쉽기도 하다.몇 년전 물레방앗간을 철거한 자리에 상록침엽수인 잣나무 몇 그루를 심어놓은 적이 있다. 이를 보고 모 군의원에게 “상림은 순수 낙엽활엽수만으로 조성된 것이 정체성과 가치를 더 높이는 것인데 그 가치를 근본적으로 해하는 잣나무를 심은 것은 옳지 않다”고 건의하여 시정된 바 있다.또 상림 윗부분에 분포되어있던 조릿대를 제거하여 상림의 운치를 해친 것을 보고 조릿대를 없앤 이유를 알아 봤더니 조릿대가 영양분을 빨아먹고 그 곳에는 어린 씨앗이 싹틀 수 없어 숲이 망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참으로 한심한 발상이 아닌가.그곳에 있던 조릿대와 나무들은 영양이 다소 부족했을지는 모르지만 자양분을 서로 나눠 먹고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왔다. 그곳이 다른 장소보다 나무의 밀생도가 결코 낮지 않았음을 뻔히 보면서 숲을 해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그 후에 상림에 영양분이 부족하다고 냄새나는 두엄을 뿌려 모든 주민과 내방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병충해를 없앤다고 방제약을 뿌리고 나무를 치료한답시고 죽은 고목과 가지를 배어 없애고 시멘트를 바르기도 했다. 올 여름에는 해충을 방제한다고 노란비닐을 칭칭 감아 흉물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상림숲을 보러 온 외지인에 비친 상림의 모습이 병든 환자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낯뜨거움과 염려스러움이 앞섰다.숲은 생로병사가 있는 곳이다. 유년기의 어린 나무. 장년기의 젊은 나무. 노년기의 늙은 나무. 죽은 나무가 자연스럽게 있어야 한다. 죽은 나무가 썩어서 버섯도 피고 벌레도 생기고 또 그것을 자양분으로 해서 새로운 나무가 탄생하여 자랄 것이다.지리산 고사목지대는 아름답고 상림의 죽은 고목은 아름답지 않다는 말인가. 한 그루 보호수의 생명연장을 위해 보살피고 치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숲의 경우는 다르지 않는가. 숲은 끊임없이 순환해야 하고 자연그대로의 자생력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해충을 죽이려고 끈끈이 비닐을 감고 독한 방제약을 뿌리면 해충이 다소 사라질지 모르나 익충도 죽을 것이다. 이로 인해 먹이사슬이 파괴되면 조류나 다른 육지동물도 깃들지 않은 죽음의 숲이 될 것이다.해마다 반복해서 숲을 치료하는데 매달려 예산을 낭비하고 청정숲을 독한 방제약이 범벅이 된 자생력 없고 약한 숲으로 만들 것인가. 모든 생명체는 유한한 것이다. 늙은 나무를 치료하여 우리 곁에 몇 년을 더 붙들고 있을 것인가. 장구한 세월로 보면 몇 년 더 연장하는 것이 얼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또 하나 상림숲에 인공물을 설치할 때도 신중해야 할 것이다. 상림숲에 소방시설을 하면서 볼썽사나운 박스를 숲 중앙길 옆에 설치해 놓았다. 그런 시설들도 눈에 띄지 않게 얼마든지 지하화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인공물 설치로 경관을 해치는 것은 숲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것이다.제발 상림숲을 자연 그대로 두어라. 딱따구리가 나무를 치료하고 인공음향 새소리가 아닌 진짜 꾀꼬리가 날아들어 노래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자연 그대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건강한 숲이 보고 싶다. 우리는 진짜 상림을 사랑하는가. 그러면 자연 그대로 두어라. 우리와 우리 후손들을 위해 숲다운 숲으로 아름답게 보존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상림숲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또 천년을 거뜬히 견뎌줄 것이다. 이미 자연그대로 두어도 천년을 견뎌온 검증됨 숲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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