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평교회 김지영목사요즘 가을 햇빛이 참으로 좋다. 고추농사를 지은 동네 아주머니는 볕이 좋아 고추 말리기에 최적이라고 말씀하신다. 햇볕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는 도무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매일 값없이 쏟아지는 햇볕으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비로소 생명을 유지해 간다.그러나 하늘에 계신 분은 우리에게 그 놀라운 햇볕을 주시면서도 한 푼의 요금을 받지 않으신다. 만일 우리가 전기요금 내는 것처럼 햇볕세를 내야 한다면 얼마를 내고 살아야 할까? 늘 무료로 주어지는 것에 대한 무감각은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축복인지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몇 주 전 대낮에 전국적인 정전 사고가 있었다. 수천 명이 갑자기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공장은 멈추고. 음식점은 카드결제가 안되고. 인터넷. 가전제품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인간이 발명한 전기가 몇 십분 끊겨도 이렇게 야단법석인데. 햇볕의 소중함은 말해서 무엇하랴! 어릴 적 살았던 휴전선 근처 시골에서는 전기가 자주 정전이 되었었다. 지금 같으면 냉장고. 세탁기. 인터넷 모든 것이 멈춰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만. 그 때에는 집에 그런 가전제품이 없어서 그럭저럭 지낼 만 했다. 정전이 되면 대신 촛불을 켰다. 형광등 불빛으로 환하던 집안에 갑자기 10촉이 될까 말까한 오롯한 불빛아래 앉아 있던 기억이 난다. 그 촛불은 휘황찬란한 전깃불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고요함과 따뜻함이 있었고. 깊은 침묵 속에서 촛불을 응시하면 자기 몸을 태우며 수직으로 서 있는 그 불꽃은 성(聖)스럽기까지 했다. 심지가 길어져서 잘라내기 위해 건드리면 잠깐 흐트러지긴 하지만. 이내 다시 일어나 위를 향해 타올랐다. 벽에 손으로 그림자를 만들고. 개모양. 토끼모양. 오리 모양을 만들며 긴 밤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요즘 우리에게는 촛불을 켜고 앉아있을 시간이 없다. 쉽게 스위치만 누르면 1초 안에 불이 들어오기에. 성냥을 찾아 불을 점화시키는 의식도 없다. 생일 케잌을 자르기 전 잠깐 외에는 촛불은 이젠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촛불 속에서 우리는 많은 삶의 여유가 있었다. 촛불을 키고 앉아 있을 때 전기 불에 대한 감사도 있었고. 내일 아침에 떠오를 햇빛에 대한 기대와 소망도 있었다. 이런 촛불의 은총을 우리는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가진 것들을 내려놓고. 내게 있는 것들을 감사할 때에 우리는 촛불의 여유와 은총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유명한 설교가 C.H스펄전은 이런 말을 남겼다. “하나님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별빛을 주시네.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네.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네.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해와 달이 필요없는 영원한 빛을 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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