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기간 / 9.23~11.6(45일간)-장소 / 합천군 가야면 주행사장과 해인사. 그리고 창원컨벤션센터-주제 / 살아 있는 지혜-구성 / 개·폐막식. 전시. 공연. 국제학술심포지엄-주최 / 경남도. 합천군. 해인사 한국 화엄종의 근본도량802년 순응·이정스님 창건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이 열린다. 천년을 이어온 고려인의 숨결을 다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대장경’. ‘천년’. ‘문화축전’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대장경축전은 일반적인 축제가 아니다. 과거의 천년을 통해 미래의 천년을 설계하는 지혜의 영감을 얻는 지식문화의 공유공간이자 공연의 장이다.이런 축제를 몸으로 느끼기 위해선 미리 알아 두어야 할 정보가 있다. 축제기간 동안 펼쳐지는 행사는 당일 현장에도 얼마든지 오감으로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전의 진면목을 알고 대장경 축전을 100배 즐기려면 해인사를 미리 알아두는 게 좋을 듯 하다.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먼저 해인사부터 들여다보자. 해인사는 802년 순응 스님과 이정 스님에 의해 창건된 한국 화엄종의 근본도량이다. 해인사는 일주문. 봉황문. 해탈문. 구광루. 관음전. 궁현당. 대적광전. 대비로전. 응진전. 명부전. 장경판전 등의 주요 건물로 구성돼 있다. 대적광전과 구광루 사이에는 삼층석탑인 정중탑이 위치한다. 경내를 들어서면서 오르게 되는 계단은 몇 개나 될까. 일주문에서 시작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장경판전에 이르는 보안문 앞까지 모두 108개다. 불교교리의 108번뇌를 상징적으로 함축했다. 장경판전을 구성하고 있는 수다라장전. 법보전. 동-서사간전의 기둥도 108개다. 이것은 해인사로 들어서는 순간. 세속을 벗어나 해탈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임을 암시한다. 경판 8만1350장 대장경쌓으면 백두산 보다 높아 ▲ 팔만대장경 판전인쇄술 발명은 지식정보 확산이란 측면에서 볼 때 인류역사에 하나의 큰 혁명이었다. 현재 해인사의 장경판전에 보관돼 있는 팔만대장경은 고려 때 불경을 집대성한 것으로 정식 명칭은 고려대장경이다. 장경판전은 국보 제52호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팔만대장경은 국보 제32호이면서 세계기록유산이다. 팔만대장경은 현존하는 목판대장경 중 가장 오래됐다. 고려시대 불력으로 거란의 침공을 물리치려는 발원에서 제작됐다. 그 의미를 살려 1011년부터 1087년까지 무려 77년에 걸쳐 고려 초조대장경이 먼저 간행됐다. 그러나 1232년 몽고군의 방화로 불타버리자 1236년에 현존하는 대장경 간행 불사를 다시 추진해 1251년에 완성했다. 지금의 해인사에 보관된 고려팔만대장경이다. 무려 750여년의 세월을 머금고 있는 목판 인쇄술의 극치인 것이다.팔만대장경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현재 보존되고 있는 팔만대장경의 전체 경판 수는 8만1350판이다. 무게는 280톤에 이른다. 경판을 쌓으면 높이는 자그마치 3200m. 백두산이 2744m 이니 그 규모를 짐작할만하다. 경판을 길이로 잇는다면 약 60㎞에 이른다. 경판 1매당 무게는 3.25㎏. 두께 3㎝. 가로길이 70㎝. 세로길이 24㎝다. 글자 수는 경판 1매(양면)당 약 644자 정도로. 전체 경판 수가 8만1350개니까 총 글자 수는 5238만9400여자가 되는 셈이다. 마치 숙달된 한 사람이 경판의 모든 글을 새겨 놓은 듯한 판각수준이 일정한 것도 불가사이한 일. 이에 추사 김정희는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신선이 내려와 쓴 것 같다”며 경판에 새겨진 글자를 극찬했다.750년간 보존의 비밀은치밀성 바탕 단순함에 있어그렇다면 목판인데도 750년의 세월동안 경판이 썩거나 손상되지 않고 어떻게 원형 그대로 보존돼 왔을까. 해인사측에 의하면 경판용 나무로는 산벚나무와 돌배나무. 자작나무 등 10여종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판각에 앞서 좀벌레 침입을 막고 나무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금물에 삶기와 그늘말림을 반복했고 표면은 옻칠 처리 했다. 뒤틀림이나 쪼개짐을 염려해 경판 옆면의 마구리 설치와 네 모퉁이에 동판을 부착하는 치밀함과 과학성도 발휘했다.경판을 보존하고 있는 장경판전을 관리하는 스님은 “날짐승이 침범하지 못하고 쥐 한 마리도 들락거리지 않았을 뿐더러 거미줄이 쳐진 일조차 없다”고 말한다. ‘과학’이라는 용어가 없었을 당시. 햇빛과 공기. 습도조절을 자연 속에서 찾았다는 조상의 슬기에 놀라울 따름이다. 경용 목재를 건조하고 다듬고 판각하는 기술만이 아니라 천년에 가까운 오늘에 이르러서도 완벽하게 경판이 보관될 수 있었던 것은 건물 내부를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단순함에는 치밀하게 계산된. 그러니까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염두해 둔 고도의 건축기술이 함축돼 있다. 자연을 극복한 비밀의 열쇠를 자연 속에서 찾은 슬기를 엿볼 수 있다. 목판이 쉽게 부식하지 않게 하는 비밀의 하나가 붙박이 살창에 있다. 벽면 아래위와 건물 옆면과 뒷면의 살창 크기를 달리함으로써 실내에 들어간 공기가 아래위로 순환하며 돌아나가도록 했다. 공기의 대류가 실내의 적정온도 유지 기능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굵은 각재를 이용해 경판을 두 단씩 세워 놓은 5단의 판가(板架)는 단마다 조밀하되 일정한 배열이다. 세워둔 경판간의 틈새가 굴뚝효과를 일으켜 수많은 경판의 온·습도를 조절토록 했다.건물이 앉은 자리는 큰 비나 가뭄을 대비해 깊이 땅을 파서 숯과 찰흙. 모래. 소금. 횟가루를 넣고 바닥을 충분히 다졌기에 과습이나 건조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했다. 조선 인문지리사상의 대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수백년 세월이 지났어도 판이 새로 새긴 듯하고. 나는 새들도 이 집을 피해 기와지붕에 앉지 않으니 실로 이상한 일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대장경은 아직도 신비롭기만 하다. ■그 밖의 볼거리들-해인사 비림 해인사에 주석했던 역대고승의 비와 탑을 모신 곳. 성철 대종사의 사리탑과 자운 대율사. 혜암 대종사. 일타 대종사의 사리탑과 비 등이 있다.-영지(影池) 못 가야산 정상이 비치는 그림자 연못. 허황후가 가야산 칠불봉으로 출가 한 자식들을 만나고자 했으나 만날 수 없게 되자 일곱 왕자가 수도하고 있는 산의 봉우리 그림자가 비치는 이 연못에서 자식들의 그림자만 보고 그리움을 달랬다는 전설이 전한다.-외나무 다리 해인사의 서쪽 진입로 계곡에 수백년 전부터 설치돼 있는 나무다리. 예로부터 이곳을 지날 때면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 경건하게 예를 갖추는 곳이다. -학사대 통일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이 가야산에 은거한 이후 해인사 경내에 식목한 전나무가 천년을 이어온 자리. 전설에는 선생이 짚고 다니던 전나무 지팡이를 거꾸로 심었기 때문에 나뭇가지가 처진다고 전한다. -해인도(만자라)돌기 해인사 마당에 네모진 큰 미로 찾기 형상인 해인도가 돌로 그려져 있다. 신라 의상대사가 창안한 도안으로 팔만대장경의 진리를 나타냄. 합장하고 해인도를 한 바퀴 돌고나면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농산정 최치원 선생이 수행하던 정자. ‘세속의 시비소리 막으려 흐르는 물로 산을 감싸네(농산籠山)’라는 시구에서 유래한 것인데 인근에 선생의 서당과 독서당이 있다 ■가볼만 한 암자들-청량사 신라시대 창건 된 것으로 추정됨. 통일신라 양식으로 보이는 여래좌상과 국보 제266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보물 제253호 석등 등 천년고찰의 향기를 전하기에 모자람이 없다.-용탑선원 근대한국불교 최고의 큰스님이자 독립운동 33인 가운데 한 분인 백용성 스님이 주석하신 암자. 백용성 스님의 비와 탑. 기도 터가 남아 있다.-홍제암 사명대사가 만년에 머물다 열반하신 호국의 도량. 대사의 열반 후 나라에서 ‘홍제존자’라는 시호를 내렸기에 암자를 ‘홍제암’이라 지었다. 법당이 보물 제1300호. 사명대사 탑비는 보물 제1301호다. 경내에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의 영정을 모신 표충사가 있다. -원당암 통일신라시대 왕실의 원찰이며 보물 제518호인 다층석탑과 석등이 있다. 미소굴에는 2002년 입적한 혜암 대종사의 사리 친견소가 있다.-길상암 홍류동 제5곡인 낙화암 위에 위치한 암자.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는 적멸보궁 기도처가 있다.-백련암 성철 대종사가 열반할 때 주석했던 암자. 경내에 성철스님의 좌상을 모신 고심원과 부처님 얼굴 형상을 한 불면석이 있다.-지족암 올라가는 오솔길이 아름답다. 대율사 일타스님이 주석했던 암자. 육각정 다실에서 관망하는 가야산의 경치가 아름답다.-희랑대 고려 태조 왕건의 국사가 된 희랑 스님의 수도처. 금강산의 보덕불과 비견될 벼랑에 세워진 암자로 독성 나반존자 기도처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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