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도의원 문정섭우리 모두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의 동창회가 있지만 가장 정이 들고 인간미와 허물이 없는 동창회는 초등학교가 아닌가 싶다. 물론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6.3.3.4년제가 되어 있는 까닭도 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초등학교는 6년이란 긴 세월을 동심에서 싸움질하고 오손도손 한 골짜기 생활권에서 허물없이 생활해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특히 농촌지역은 한 학년이 남녀 합하여 고작 한 반으로 필자의 경우 55명에 불과 했다. 당시는 의무교육이라고 했지만 경제적으로 학교를 다 보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늦게 입학을 시켜 같은 학년이라도 나이가 두 세살 차이가 났고. 한글이나 산수의 능력이 어느 정도 향상되면 나이에 따라 월반을 시켰고 여학생은 남학생 보다 2∼3세가 많은 게 보통이었다.필자의 초등학교 동창회는 60년 졸업 후 2년 뒤 쌀 한 되씩을 거두어 시작했으며 98년 48회로 폐교가 된 학교 9회 졸업생으로 선후배 중 제일 잘 나가는 동창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도에 불우한 동창을 도와 주느라 기금이 고갈되기도 하였지만 참여도를 높여 회 기금을 늘려 나갔다. 61세가 되던 2007년도는 6박7일간 해외여행으로 30명이 중국을 다녀왔고 금년도는 2박3일 일정으로 부산. 동해안. 서울을 다녀왔으며 70세가 되는 2015년도에는 유렵 해외여행을 결의한바 있다. 하지만 벌써 남자만 9명이 이 세상을 떠났고 미국 이민 3명 외. 이런 저런 사유로 참석하지 못한 인원을 제외하고도 매년 30여명이 고맙게도 참석해주고 있는 일은 큰 다행이라 생각된다. 동창들은 남녀의 성구별이 없으며 한때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싸움질하던 일도 이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팀들은 고스톱하고 디스코 치고 2차를 가기도 한다. 지난봄 동해안 여행에 모처럼 참석했던 한 친구는 50여년 만에 만난 친구들을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연고자들이 협찬을 해주어 당초 예상했던 여행경비도 절반 정도로 줄일 수 있었다.이제 전국 각처에 살면서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친구들에게도 잦은 안부를 전하여 칠순의 해외여행 시에는 모두가 건강하게. 참석토록 지금까지 해왔던 벌초 해주기며. 산나물 및 농산물 보내기. 간식 및 술안주 제공 등을 더 열심히 하여 2차례 4년 간에 걸쳐 해온 총무직을 앞으로 2차례 더하여 칠순 해외여행 때 생존하고 있는 모든 동창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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