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평교회 김희수 목사목사란 자고로 설교를 잘해야 한다고들 한다. 심방도 잘하고 교육도 잘하고 교회 행정도 잘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다.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감화를 끼쳐야 다른 것도 잘 할 수 있다. 설교를 잘해야 목사로서 권위가 서는 것 같다. 그래서 토요일이면 다른 모든 것을 중지하고 설교준비에 매달린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도 밤늦게까지 끙끙거린다. 그렇게 힘들게 준비해도 여전히 설교시간에 성도들을 평안하게 주무시게 만든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서 외쳐도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으니 때로는 그냥 대충 준비할까라는 생각이 살짝 나를 유혹하기도 한다. 한 동안 나의 소원은 설교를 잘하고 싶고. 글을 잘 쓰고 싶은 것이었다. 나로선 참으로 절실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설교를 잘하고 싶은 것. 아울러 글을 잘 쓰고 싶은 욕구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유도 많았다. 그러나 더 깊은 내면 속에는 역시나 그 놈이 숨어 있었다. 설교가 끝난 후. ‘정말 은혜 받았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고. 또 글을 읽은 독자로부터 ‘감명 받았습니다.’ ‘정말 글을 잘 쓰시네요.’라는 등의 칭찬과 감탄을 듣고 싶어하는 바로 그 놈.설교란 잘하고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것이 좋은 설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에 입각해서 충실하게 전하는 것이 설교자의 임무이다. 각 사람 마음을 움직이고 그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하시는 일은 그 분께서 하시는 일이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 글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독자는 작가가 쓴 글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내고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글을 읽은 후 받는 감명은 사실 작가의 역량만이 아닌 것이다. 설교를 들은 후 성도가 어떠한 은혜를 받았다거나. 글을 읽은 후 독자가 어떠한 감명을 받았든지 그 일은 이미 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내 일이 아닌 일에 대해서까지 내가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욕심인 것이 틀림없다. 농촌은 한창 모내기로 바쁘다. 찰랑찰랑 물이 고인 논에 하늘도 들어오고 큰 산도 들어온다. 농부들은 최선을 다해 모를 심고 정성으로 가꾼다. 그러나 모가 자라 결실하려면 비가 와야 하고 바람이 불고 햇볕이 내리 쬐어야 한다. 농부들은 정성을 다할 뿐이다. 그들은 겸손히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그분들에게서 배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최선을 다하고 진심을 다하는 것뿐이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하여 가지려고 애를 쓸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진심을 다할 일이다. 진심을 다하면 적어도 나는 변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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