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순행 전 의원필자가 난초를 기른 지는 참 오래 되었지만 난실에 올망졸망 심어둔 난 중에 특히 자랑할 만한 희귀 난초는 거의 없고. 오히려 난을 키우기 시작한지 채 5년도 안된 애란인들이 훨씬 많은 고급난들을 소장하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마누라 말마따나 “인간이 뭐 한가지 제대로 하는기 없다”하지만 그 초라한 내 난실은 가파른 삶을 살아가면서 도저히 해결할 길이 없는 절망의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폐증 환자처럼 홀로 시간들을 보내야 할 때. 키 큰 백수가 방에 뒹구는 게 죽음보다 싫어 무조건 차를 타고 밖을 나왔을 때는 별수 없이 난실을 찾아가 시간을 보낸다. 어떨 땐 아침 8시30분 난실에 출근(?)해서 온종일을 지내는 경우도 많은데 난실에서 하는 일이라는 게 고작 물을 주거나 약제처방 및 시비 정도인데 다 합해봐야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노동이다. 그러다 보니 나머지 9시간은 남의 사무실에서 얻어온 지나간 주간지나 신문을 읽고. 그마저 다 읽고 나면 커피를 만들어 마시고. 그리고 난초를 쭈욱 둘러봤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담배를 피우고. 10평 남짓한 난실에서 이러한 과정을 8시간 정도 반복하다 오후 5시정도 퇴근(?)을 하는데 희한한 것은 그맘때쯤 담배가 꼭 5개비씩 남는데 이건 밤에 동청강변 내집 거실에서 피운다. 며칠 전 김태호 전 지사가 귀국길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일하고 싶어서 미치겠다!”라는 말을 했듯이 백수로 지낸다는 건 참 어렵다. 꿈을 설계하기 곤란한 환갑나이의 경제적 고독은 더욱 사람을 미치게 하고. 키 큰 백수는 가족들 앞에 작디작은 난쟁이로 살아가야 한다. 오직 다정하고 마음 편히 다가서는 건 난실에 가득 찬 나의 난초들이다. 난초들은 필자가 어려울 때 감내하는 인내를 가르쳐 주었고. 욕심을 버린 마음 위에 희망을 틔우는 법도 가르치고. 무상한 인생길에 무엇이 실제인지 많은걸 가르치는 고상한 친구이다.요 며칠은 거의 휴대폰을 꺼 놓고 지내는데 그 이유인즉 군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면 이번은 무조건 당선이니 용기를 내어 꼭 출마를 해 보라는 권고성 전화들이 걸려오기 때문이다. 세상은 참 야박한 것이 떠난 사람 눈물도 마르기 전이건만 현실의 시간은 또 이렇게 흐르나보다. 2006년 필자의 재선도전 직전에도 출마권유를 많이 받았는데 상황이 그때와 너무 닮아있어 잊혀져 가는 악몽만 되살아나 몸서리가 쳐진다. 어렵게 살아온 유년시절부터 이 나이까지 남 괴롭히지 않고 조심하며 살아왔건만 지나간 삶에 있어 한가지 큰 실수를 했다면 선거에 뛰어든 몽매함이 아닐지... 자신의 형편과 그릇이 어떤지 살피기보다는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정서에 우쭐하여 결국 파국으로 떨어지는 이카로스의 날개를 달았던 지난날 악몽은 죽을 때까지 후회로 남을 것이다. 군의원 선거에 출마하면 가까운 지인들과 적을 많이 만들고. 가난뱅이 되고. 당선돼도 임기 끝날 때까지 칭찬 듣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열심히 지역 보살피다가 혹 실수라도 해서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라도 하면 자칫 죽을 때까지 나쁜 이미지를 짊어지고 갈 수도 있고. 몸에 작은 생채기라도 생기면 그 곳에 수억 마리의 균이 달려드는 것처럼 평소 잘 했던 것들은 이 우글거리는 여론에 묻혀 흔적 없이 사라지는 아픔이 전·현직 공직선거 출마자들의 숙명은 아닐지... 선거 이야기가 너무 길었나보다.난초가 필자에게 개인교수 강의를 잘 해서 그런지 분수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젠 관념적인 것에서 체득을 통한 경험적 진리로 깨달아 간다. 버리면 참으로 행복하다! 남들은 용기 없는 유약함으로도 표현하지만 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 큰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던가! 봄빛에 보춘화 망울진 솔밭을 거닐며 회귀 난초를 찾아다니는 요즘의 세월이 너무도 편안하고 이제는 뺏기고 싶지도 않다. 엊그제는 전남 담양군에 난초 캐러 갔다가 검적색 붉은 꽃을 한 포기 캤는데 산채경력 20년에 처음이다. 어제도 엽예품 무늬종을 캐 왔고. 캐었을 때나 심어 놓고 관상하는 시간들 마디마디 짧은 행복을 느끼며 산다.동청강변 우리 집 유리창에 유년의 달빛이 드리우면 강둑에 나가 피우는 담배 맛도 좋고. 왜가리 강 위를 날며 던지는“꽥! 담배 끊어!” 잔소리는 하도 들어서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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